올해 3월 말 북한 평양 시내 고려호텔 앞 창광거리 야경. 가로등조차 켜지 못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전력 사정이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한국은 300kW를 사용하면 2만7790원을 낸다. 북한은 300kW에 북한돈 17만6700원을 낸다. 이를 북한의 달러 환율 8300원으로 계산하면 21.3달러 정도 되는데, 한국 환율 1130원을 대입할 경우 한화 2만4000원 정도 된다. 전기세가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올해 7, 8월 한국전력의 한시적 누진제 완화 조치로 가구당 평균 19.5%의 전기요금이 절약됐음을 고려하면, 올해 평양의 전기세는 경우에 따라 한국보다 더 비쌌다. 한국은행 추산 2016년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46만 원으로, 남한의 2016년 1인당 GNI 3212만 원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전기세가 얼마나 높은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평양 시민들은 고액 전기세를 내도 좋으니 전기만 계속 들어오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은 평양 가정에 에어컨 장만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했다. 당국도 올해 개인주택 에어컨 사용 금지령을 전격 해제했다.
북한에선 원래 김정은이 하사한 이른바 ‘선물주택’ 외엔 개인 집에 에어컨을 놓는 것이 허가되지 않았다. 은하수악단이나 국립연극단 등 예술인 아파트나 평양시 중심부 봉화역 옆의 ‘선물아파트’ 등이 대표적인데, 이런 아파트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게다가 선물주택은 kW당 35원인 ‘국정전기’를 한 달에 300kW까지 공급해 주기 때문에 전기세 걱정이 크게 없다. 다른 일반 주택은 국정전기를 월 50kW까지만 쓸 수 있다. 그 이상 사용하면 전기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기세가 끔찍하게 높아졌지만, 올해 평양에선 에어컨이 없어서 팔지 못했다. 중국에서 밀수한 수백 위안 정도의 싸구려 에어컨도 500달러 이상에 팔렸다.
평양이 에어컨 사용을 허가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올해 전기 사정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정보원 격인 북한 보위성은 지난해 중국에서 각각 20만 kW 능력의 화력 발전설비 2대를 밀수해 들여갔다고 한다. 서해를 통해 배로 들여갔는데, 제재를 피하려고 군사작전 같은 극비 운송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1대는 올해 초 평양화력발전소에 설치했는데, 여기에서 현재 19만 kW가 생산된다고 한다. 기존 북한의 실제 전력생산량이 130만 kW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발전설비 1대를 설치해 15% 정도의 전력 증산이 이뤄진 셈이다. 나머지 1대 설치도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는 평양에 공급되지만, 연쇄적으로 지방의 전력 사정까지 많이 좋아졌다.
북한은 평양시내 ‘숫자식 적산전력계’ 설치도 올해 완료했다. 적산전력계 설치는 10년 전부터 추진됐지만 많은 시민이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공짜도 아니고 30달러씩 내야 설치해 주기 때문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올해는 각종 불이익을 준다는 역대 최강의 ‘협박’이 이뤄지면서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황당한 사실은 서울보다 더 비싼 전기세를 받고 있고, 그 밖에도 각종 명목의 사용료가 존재하는 북한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외부에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4월 1일은 ‘세금 제도 폐지의 날’이라는 북한 기념일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