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가족’. 1918년.
실레는 클림트를 능가하는 재능으로 인정받은 천재 화가이자 적나라하고 에로틱한 누드화로 20세기 초 빈 미술계를 뒤흔든 문제적 작가이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 그의 누드화들은 종종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1915년 실레는 4년을 함께했던 가난한 연인 대신 중산층 출신의 에디트와 결혼했다. 결혼 4일 만에 1차대전에 징집됐으나 군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아 여러 전시회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렸다. 1918년은 그의 명성이 절정에 오른 해였다. 빈 미술계의 거장 클림트 사망 후 3월에 열린 ‘분리파’ 전시회에서 실레는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림값이 뛰고 초상화 주문이 쇄도했다. 비로소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시기를 맞았던 것이다. 더 기쁜 일은 아내가 결혼 3년 만에 임신을 한 것이었다. 이 그림은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기쁜 마음으로 실레가 그린 가족화다. 엄마에게 오롯이 의지하고 있는 아기, 아기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엄마, 가장으로서 가족을 보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순수하고 천진한 가족의 초상이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그해 10월 28일 빈까지 퍼진 스페인 독감으로 에디트가 6개월 된 배 속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3일 후 실레 역시 독감에 감염돼 세상을 등졌다. 그의 나이 겨우 28세였다. 당시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 수는 1차대전 사망자의 3배가 넘었다.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이 바로 독감이었던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