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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우승 앞두고 속이 까맣게 타는 박동혁 감독

입력 | 2018-10-26 05:30:00

K리그2 챔피언이 눈 앞이지만 마냥 웃을 수 없다. 경찰팀 아산 무궁화는 내년 팀이 해체 될 위기에 놓여 있다. 경찰청이 2019년부터 선수 선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박동혁 감독이 매일 밤잠을 설치는 이유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2018시즌 프로축구 K리그의 순위표를 보면(25일 현재), K리그1은 전북 현대, K리그2는 경찰축구단인 아산 무궁화가 선두에 올라 있다. 전북은 스플릿라운드를 앞두고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했다. 3경기 남은 아산도 우승의 문턱에 와 있다. 우승한 전북 최강희(59) 감독에겐 복이 굴러왔다. 엄청난 연봉을 받고 내년 시즌부터 중국 슈퍼리그 톈진 취안젠의 지휘봉을 잡는다. 반면 아산 박동혁(39) 감독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 내년에 팀이 해체될 지도 모를 딱한 처지다. 우승을 코앞에 두고도 그의 속은 새카맣게 타고 있다.

문제는 선수수급이다. 경찰청은 당초 일정 기간을 두고 선수충원을 차츰 줄여나갈 예정이었지만, 그 일정이 갑작스럽게 앞당겨졌다. 당장 내년부터 선수선발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선수를 받지 못한 채 기존 선수들이 순차적으로 제대할 경우 내년 아산선수단은 14명만 남게 된다. 이는 ‘클럽별 등록선수 수는 최소 20명’이라는 K리그 선수규정 제4조 제1항에 위배돼 K리그 참가가 불가능하다.

문제가 불거진 지난달부터 축구단과 아산시, 프로축구연맹이 백방으로 애를 쓰고 있지만 진척된 건 없다. 축구인들도 유예기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해결했으면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경찰청의 기본 방침은 변함이 없다.

박 감독은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면서 “의무경찰을 매년 20% 감축하듯이 선수단도 그렇게 순차적으로 하면 되지 않나. 이렇게 끝내는 건 너무 허무하다”며 허탈해했다. 아울러 그는 “아산시와 홈팬들, 그리고 우리 축구단이 이렇게 똘똘 뭉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 감독은 초짜 감독이다. 2014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한 뒤 스카우트와 코치를 거쳐 올해 처음 사령탑에 올랐다. 전북 이동국과 동갑인 그는 K리그 최연소 감독이기도 하다. 감독 선임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나이가 어린데다 코치 경력이 짧아 잘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 특히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그 덕분에 아산의 조직력은 탄탄해졌다. 7월에 5명, 10월에 6명 등 주요 선수들이 전역했지만 팀은 흔들리지 않았다. 박 감독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산 박동혁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아산은 21일 벌어진 33라운드가 고비였다. 하지만 성남을 1-0으로 꺾고 승점 63이 되면서 2위와 승점차를 7로 벌렸다.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추가하면 자력 우승이다. K리그2 우승팀은 곧바로 K리그1로 승격한다. 힘든 과정을 참고 견뎌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결실의 계절이다. 그러나 그 꿈이 영글기도 전에 시련을 겪고 있다.

박 감독은 “감독 첫해에 성적 부담이 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구단간의 신뢰가 두터웠다. 그게 큰 힘이 됐다. 이런 성과를 낸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우승을 하게 되면 당당히 승격할 자격을 얻는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니다. 프로리그에서 우승을 한다는 게, 그리고 승격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팀이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팀의 우승과 함께 데뷔 첫 해 우승 감독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실직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나보다는 선수들이 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 앞에서는 가급적 현재의 상황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 똘똘 뭉쳐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에게 포기란 없다. 그는 “우선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우승해야한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승하면 트로피를 들고 세리머니도 할 것이다. 또 우리가 우승을 해야 팀이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면서 “선수충원이 이뤄져 내년에 K리그1에서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데뷔 첫 해에 능력을 증명해보인 젊은 지도자가 우승과 동시에 인생의 좌절을 겪게 될 처지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팀 해체라는 날벼락만은 막아줘야 하지 않을까.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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