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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팍팍한 세상 적셔주는 샘물 같은 老부부의 200억 기부

입력 | 2018-10-26 00:00:00


수십 년간 매일 새벽 리어카를 끌고 과일을 떼어와 시장에서 팔아온 노부부가 평생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며 모은 2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고려대 법인인 고려중앙학원에 기부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영석(91), 양영애 씨(83) 부부다. “젊은이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며 재산을 쾌척한 김 씨 부부의 사연은 선진국 문턱까지 성장한 우리 사회의 오늘이 있게 한 미덕이 무엇인지를, 왜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6·25전쟁 후 무일푼으로 출발한 부부는 청량리 무허가 판자촌에 살며 리어카로 과일을 떼다 팔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고 품질 좋은 과일을 파는 가게’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남들보다 서너 시간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차비를 아끼려 늘 걸어 다녔고 새벽에 과일을 떼다 놓은 후엔 밥값을 아끼려 근처 해장국집에서 일을 도우며 식사를 해결했다. 근면 검소 정직 신뢰…. 기본이 되는 미덕들을 평생 실천한 결과 큰 재산을 일군 것이다.

김 씨 부부는 삶의 황혼을 기부로 장식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가지 못한 부인 양 씨는 “어린 학생들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평생 땀 흘려 번 돈을 자신과 별다른 연고도 없는 대학에 기부하는 것은 사회의 미래에 대한 깊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결단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발아(發芽) 단계지만 감동적인 기부 소식은 점점 잦아지고 있다. 2015년 교통사고를 수습하던 중 눈길에 미끄러진 차에 크게 다쳐 3년간 투병해온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김범일 경감은 어제 명예퇴임하면서 2000만 원을 공상자 지원 재단에 기부했다. 휠체어 없이 움직일 수 없고 세 자녀를 키우는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지난해 1월 ‘영예로운 제복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에 자비를 보탠 것이다. 평생 근면과 절약, 정직, 봉사의 미덕을 실천해온 세대가 솔선해 보여주는 기부의 감동은 팍팍한 세상을 적셔주는 샘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