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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형준]도요타, LG전자, 코오롱… 3개 기업의 공통점은?

입력 | 2018-10-26 03:00:00


박형준 산업1부 차장

일본 대표 기업이자 협력적 노사관계로 유명한 도요타자동차도 한때 전투적 노조로 골머리를 앓았다. 1950년 도요타는 종업원 약 20%를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발표했고 노조는 전투적 쟁의를 벌였다. 생산직에서 시작된 쟁의는 점차 관리직까지 확대됐다. 도요타는 한때 작업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그 후 약 10년간 도요타 노조는 크고 작은 쟁의를 벌였다. 자동차 생산공정 특성상 협력회사를 포함해 어느 한 조립라인 직원들이 쟁의를 하면 전체 생산공정을 세워야 했다. 쟁의를 할수록 오히려 노조원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결국 도요타 노사는 1962년 ‘노사선언’에 합의했다. 합의서 말미에 ‘일본의 도요타에서 세계의 도요타로 도약하는 눈부신 영광을 획득하기 위해 회사, 노동조합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을 맹세한다’고 적었다. 그 후 도요타 노사는 2인3각으로 협력했다.

다른 일본 기업들의 노사 역사도 대체로 도요타와 비슷하다. 요즘 일본에선 전투적 쟁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상급 노조가 전국적 투쟁을 벌이거나 강경 노조원이 경찰과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의 노동운동은 전투적 투쟁(1945년 패전 직후)→노조와 경영진의 타협적 단계(19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노조의 경영 참가 단계(1970년대 중반 이후) 등의 순으로 발전해 왔다(스즈키 아키라·鈴木玲 호세이대 교수).

국내에선 LG전자와 코오롱이 한때 전투적 노조로 홍역을 앓았다. 1989년 임·단협에 불만을 품은 LG전자 창원공장 노조원들은 지게차로 경부고속도로를 막았고, 대로에 폐유를 뿌리고 방화를 했다. 124일간 이어진 파업으로 LG전자 창원공장은 쑥대밭이 됐고, LG전자는 가전업계 1위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

2000년대 초반 한국 화섬(化纖)업계 전반이 위기에 빠지자 코오롱은 일부 섬유사업을 접기로 하고 근로자를 구조조정했다. 그러자 코오롱 구미공장 노조는 구미공장 정문을 점거하고 ‘코오롱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며 맞섰다. 2006년 3월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서울 성북구 자택 대형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가 경비원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변화의 시초는 ‘이러다가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었다. 2006년 7월 코오롱 구미공장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김홍열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사가 대치하다가 낭떠러지에 몰려 ‘이러다 죽겠구나’ 생각이 들면, 그때서야 노사 화합의 힘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근 노조 간부를 9명에서 5명으로 줄였고, 구미공장의 주요 고객사를 일일이 찾아가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1990년 LG전자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유재섭 씨는 취임하자마자 회사에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가전시장 1위를 탈환하겠다. 그 대신 회사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임금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 1위를 되찾겠다’고 말하는 노조위원장을 보며 회사는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다음 달 21일 총파업을 강행한다고 한다. 현대·기아자동차 노조는 연례행사처럼 매년 파업을 하고,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상태인데도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극한 노사 대치로 공장 문을 닫았을 때 깨치면 늦다. 도요타, LG전자, 코오롱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판 노사선언’이 잇따라 나오길 기대한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