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취직이 어렵다고, 안 된다고 난리입니다. 그런 와중에 안에 들어와 있던 가족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밖의 가족이 쉽게 정규직이 되는 혜택을 받았다면 공정사회의 기반이 흔들리는 큰일입니다. 대한민국은 ‘가족의 나라’라고 주장한 제 말이 맞아떨어진 것 같아 당혹스럽습니다. 가족과 남은 물론 다릅니다. 하지만 가족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챙긴다면 같은 땅에 서로 주민등록을 하고 사는 입장에서 할 일이 아닙니다. 가족은 배려, 남은 배제하는 사회는 건강하게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유치원 비리도 당사자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가족이 앞으로 배부르게 살기 위한 일’로, 남의 아이들이야 잠시 배가 고파도, 배가 아파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을 겁니다.
정부와 정당들의 대책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대책의 내용도 누구를 가족으로, 누구를 남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초점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정규직 전환 비리는 그러한 정략적 기준에 따라 강조되거나 무시됩니다. 유치원 사태에도 ‘가족의 논리’가 적용됩니다.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철저하게 파헤쳐서 수치와 모멸을 경험하게 합니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교묘한 논리를 전개시켜 ‘소낙비’를 피해가는 전략을 씁니다.
잘못을 논할 때는 “이런 행동은 잘못한 것이야!”라고 해서 죄책감을 일으켜야지 그 사람 전체를 가지고 “너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해서 수치심을 일으켜서는 효과는 없고 후유증만 생깁니다. 특히 언론을 포함해 집단이 뭇매를 때리는 식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릅니다. 잘못한 것을 고치게 하면 되지, 잘못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는 미리 그런 사태를 예측하고 예방책을 정책에 포함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심리적 특성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거나 무시되었기에 일어난 결과물입니다.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입니다. 기존에 시스템에 들어와 있는 가족이 정책입안자들보다 훨씬 더 그 시스템을 잘 알면서 가족을 위한 활용법을 밤낮으로 연구해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행위를 억제하는 심리적 기제에는 수치심과 죄책감 유발이 있습니다만 현실에서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당장 얻는 이득이 아주 클 경우 두 방법 모두 크게 효과가 없습니다. 잠시 눈을 질끈 감으면 아주 오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약효가 떨어집니다. 그러니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마련된 법과 규정이 투명성과 합리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사회와 섞여서 공정하게 사는 방법은 어린아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의 비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유치원 사태는 매우 역설적인 교훈과 풀어야 할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단 그것이 우리 사회의 맨얼굴임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방법을 찾읍시다. 물론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드러난 ‘반칙’도 우리의 또 다른 부끄러움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