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가 법원의 '접근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전처를 찾아가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서울 강서구에서 일어나면서 해당 제도를 위반한 자에 대한 처분의 ‘허술함’이 도마에 올랐다.
격리조치(접근금지)를 위반한 가정폭력범에게 과태료 처분을 하는 것은 제도의 실효성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과태료 마져도 제대로 부과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접근금지를 위반한 가정폭력범 중 과태료 처분을 받는 사람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1월~2018년 7월까지 가정폭력 '임시조치'(접근금지) 대상자 1만9270명 중 신고된 위반자는 1369명(7.1%)이었고, 위반자 가운데 362명(위반자의 26.4%)만이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긴급임시조치'위반자가 과태료를 받는 경우는 더 적었다. 같은 기간 '긴급임시조치'대상자는 4643명이었고 이중 위반자는 133명(2.9%)이었다. 과태료 부과는 위반자 중 28명(21.1%)에 불과했다.
가정폭력범에 대한 격리조치는 '긴급임시조치'와 '임시조치' 두 가지로 나뉜다. 긴급임시조치는 사건현장의 상황이 매우 긴급할 경우 경찰이 내리는 조치로, 법원 조치인 '임시조치'의 전 단계다.
정 의원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보호조치 실효성을 위해 임시조치 위반자에게 과태료 부과가 아닌 징역형을 내려야 한다"며 "가정폭력 가해자 격리조치를 제대로 해야 '제2의 등촌동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살해되기 전에 국가가 그를 도울 기회는 적어도 두 차례 있었다. 2015년 가족이 경찰에 김 씨를 신고했지만 김 씨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흐지부지됐다. 1년 뒤 김 씨가 이 씨를 찾아가 칼로 살해 협박을 한 날에도 이 씨는 경찰서에 갔지만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무겁게 처벌하긴 어렵다"는 설명에 자포자기했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의 딸은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아빠는 법의 제재에 대해서 전혀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며 "접근금지 명령에 대해서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거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단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는 이혼 후 4년 동안 거처를 6군데를 옮겨다니면서 불안에 떨다가 가셨다"고 말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