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글로벌 포커스]軍경력자부터 성소수자까지… 역대급 ‘핑크 웨이브’ 선거 예고

입력 | 2018-10-27 03:00:00

美 중간선거 여풍당당




11월 6일 있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연방 하원은 최근까지 민주당이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 민주 양당의 의석수 못지않게 얼마나 많은 여성 후보가 연방의회에 입성하게 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상·하원에 출마한 여성 후보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차별적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AP 뉴시스

다음 달 6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의원(뉴저지주)에 도전하는 미키 셰릴(46)은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지역에서 선전하는 민주당 후보로 꼽힌다.

경력부터가 남다르다. 9년간 미 해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복무한 뒤 조지타운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고 뉴저지주 연방 검사로 활동했다. 그는 12세부터 6세까지 네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셰릴은 자신의 화려한 커리어를 내세우기보단 유세장에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며 일과 가정을 동시에 지키는 ‘강한 엄마’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선거 캠페인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여성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 전략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13∼17일 진행한 뉴욕타임스(NYT) 여론조사에서 셰릴은 49%로 공화당의 제이 웨버를 11%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의 격차는 최근 들어 더 벌어지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 출사표를 낸 후보들 중에는 셰릴 같은 ‘터프한 엄마’가 적지 않다. NYT는 “전통적으로 어린 자녀를 둔 여성 후보들은 유권자로부터 ‘아이는 누가 돌보냐’는 회의적인 질문에 직면하기 때문에 주로 아이를 내세우지 않도록 조언을 받았다”며 최근의 선거 변화를 “혁명적(revolutionary)”이라고 평가했다.



○ 트럼프 시대에 분노한 여성들 정치무대로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언론에선 ‘우먼파워(women power)’ ‘핑크 웨이브(pink wave)’라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 실제로 미 여성 정치사에 남을 만한 기록들이 쏟아지고 있다.

럿거스대 여성정치센터(CAWP)에 따르면 올해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낸 여성 후보는 476명에 이른다. 이 중 예비선거 경선(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해 실제 후보가 된 여성은 237명(단독 입후보자 포함)이다. 이는 기존의 여성 역대 하원 예비선거 최다 출마(2012년 298명), 최다 하원의원 선거 후보(2016년 167명) 기록을 모두 넘어서는 수치다.

상원 역시 종전 기록(2016년 40명)을 넘어서는 53명이 도전해 최종적으로 역대 최고(2012년 18명) 기록보다 5명 많은 23명(단독 입후보자 포함)이 상원의원 후보로 확정됐다. 또 최다 주지사 후보(10명→16명), 주의회 의원 후보(2649명→3379명) 등도 신기록을 작성했다. 여성 후보 수가 늘다 보니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여성 후보가 출마해 맞대결을 벌이는 선거구도 28곳에 이른다.

이 같은 변화가 최근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흐름과 함께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성차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2016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뒤 수주일 동안 여성 정치 지망생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에밀리 리스트’에 약 1000명의 여성이 신규 등록했다. 이는 2014∼2016년 3년간 이 단체에 등록한 여성(920명)에 맞먹는 수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많은 여성이 있고 그 지지가 강력하지만 더 많은 여성이 그에게 반대하고 있고 반대의 강도는 남성보다 훨씬 더 세다”고 지적했다. 2016년 ‘올해의 교사’ 출신 정치 신인인 자하나 헤이스 연방 하원의원 민주당 후보(코네티컷주)는 최근 CBS 인터뷰에서 “많은 여성이 정치에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해 출마했다”며 “용기는 전염성이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여성 정치인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92%가 여성의 정치 진출이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에 공화당 지지자는 50%에 그쳤다. 이 같은 경향은 경선 통과에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 여성 후보 중 43%가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가 된 반면에 공화당 여성 후보 중에선 13%만 경선을 통과했다. 결과적으로 중간선거에 나온 여성 후보 4명 중 3명은 민주당 소속이다.



○ 참전용사부터 트랜스젠더까지

여성 후보 수가 늘어난 만큼 선거 전략도 다양해졌다. 네 아이의 엄마 이미지를 부각시킨 미키 셰릴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위쪽)와 전투기 조종사 경력을 앞세운 마사 맥샐리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유튜브 캡처


여성 후보의 수가 늘어난 만큼 배경도 다양해졌다. 팔레스타인 이민자 2세인 라시다 털리브 연방 하원의원 민주당 후보(42·미시간주)는 미국 최초의 무슬림 연방 하원의원을 노리고 있다. 선거구가 민주당의 초강세 지역이어서 공화당이 입후보자를 내지 않아 당선이 확실시된다. 버몬트 주지사 민주당 후보인 크리스틴 핼퀴스트(62)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주지사 후보로 화제가 됐다.

전투기 앞에 서서 강인함을 강조한, 퇴역 군인 출신 여성 후보의 선거 캠페인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으로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후보(애리조나주)로 나선 마사 맥샐리(52)는 미국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경력을 내세우며 애국심과 남성 못지않은 터프함을 강조하고 있다. NPR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군인 출신 여성 후보가 12명(민주당 10명, 공화당 2명)이나 출마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성 정치인을 꺾고 파란을 일으킨 여성 후보들도 있다. 민주당의 뉴욕주 연방 하원의원 경선에서 현역 의원이자 민주당 내 서열 4위의 10선 의원 조지프 크롤리와 맞붙어 승리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28)가 대표적이다. 라틴계인 오카시오코테즈는 중성적 이미지를 내세우려는 과거 여성 정치인들과 달리 빨간 립스틱과 하이힐 등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도 일부 후보는 부친의 폭력, 어린 시절 성폭력 경험 등 사적인 상처를 거침없이 폭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 후보들이 선거 자금 모금 등에서 아직까지 남성들에게 많이 밀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NPR가 8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쟁이 치열한 지역을 기준으로 여성 후보는 남성 후보에 비해 선거 캠페인 모금액이 평균 50만 달러(약 5억7000만 원)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