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홍현분 씨(57)는 다시 한번 사막을 누비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며 몸을 만들고 있다. 2006년 사하라사막마라톤과 2007년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한 뒤 사막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막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누눈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오아시스 때문이라고 했다. 진짜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에서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었다. 물이 있으면 나무가 있고 새도 있고…. 또 씻을 수도 있어 좋았다.”
홍현분 씨 제공
사막이 좋은 점이 또 있단다.
혼자 사막을 달리면 외롭고 무섭지 않을까.
“아버지 품을 향해 달린다고 생각하면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다. 난 어렸을 때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았다. 경기도 화성 시골에서 도시로 공부하러 갔다 토요일 마다 집에 갔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마당에서 양팔을 벌리고 내가 달려오길 기다렸다. 난 힘차게 달려 아버지 품에 안겼다. 사막을 달리면 아버지가 양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달린다. 그럼 사막이 마치 고향 가는 길 같다.”
평범하게 가정만을 돌보고 있던 홍 씨는 2002년 우연한 기회에 마라톤에 입문하게 됐다.
“평소 수영과 등산을 즐기고 있었는데 아는 언니가 마라톤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 언니 남편이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내가 뭐든 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등산도 한번 시작하면 정상까지 오르지 중간에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런 모습을 보고 그 언니가 ‘넌 끈기가 있으니 마라톤 한번 해봐라’고 했고 그게 계기가 됐다.”
“마라톤을 하겠다고 한 뒤 25일 만이었다. 참가신청을 못해 개인 사정상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 번호를 달고 달렸다. 뭣도 모르고 달렸는데 5시간 17분에 완주했다. 5km, 10km, 하프코스 등을 전혀 달려보지 않았다. 그런데 마라톤 풀코스는 딱 내 스타일이었다.”
6개월 뒤 춘천마라톤에서 제대로 달렸다. 4시간20분.
“마라톤의 매력은 ‘마의 구간’이라고 일컬어지는 30km에서 42.195km 구간을 달리고 나서 얻는 쾌감이다. 너무 지쳐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내가 힘들면 누구나 힘들다고 생각하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 결승선을 통과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마의 구간을 달릴 땐 힘이 없어 완주 못할 것 같은데 완주하면 활짝 웃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런 과정이 좋다.”
개인 최고기록은 3시간33분이다. 2007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3시간 43분, 그해 11월 중앙마라톤에서 3시간 37분, 그리고 2008년 4월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홍현분 씨 제공
마라톤에 빠져 있을 때 사막마라톤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만났다. 100회마라톤클럽과 해누리마라톤클럽에서 동호인들과 함께 달리는데 해누리마라톤클럽 회원으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이룬 이무웅 씨(75)가 “사막이 너무 아름다우니 달려보라”고 권한 것이다.
“15km 배낭을 메고 250km를 달리는 사막마라톤에 참가한 선배님이 ‘사막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고 했다. 나도 새로운 경험을 즐긴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아서 참가했다.”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은 사하라마라톤(이집트)과 고비사막마라톤(중국), 아타카마사막마라톤(칠레), 그리고 남극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다. 홍 씨는 “2, 3년 뒤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며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막마라톤을 완주한 뒤 극한에 도전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2009년 한반도횡단 308km마라톤을 완주했다. 경기도 강화도 창우리에 강릉 경포대까지 2박3일에 완주했다.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는다.”
2014년엔 미국에서 8연풀(8일 연속 풀코스 완주)을 하기도 했다.
“2010년 뉴욕마라톤, 2011년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할 때 어우동 한복을 입고 달린 적이 있다. 그 때 교포들이 그렇게 좋아했다. 현지 신문에 내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 때 사귀었던 교포가 미국에서 8연풀 대회를 하는데 달려볼 생각이 없냐고 해서 바로 달려갔다. 8개 대회를 모두 5시간 안쪽으로 달렸다.”
홍현분 씨 제공
홍 씨는 한 때 1년에 풀코스를 35회 완주하기도 했다. 제주 4연풀(4일 연속 풀코스 완주)도 완주하는 등 거의 매주 풀코스를 달렸다. 지금까지 풀코스 완주만 280회. 세계 6대 마라톤(보스턴 시카고 뉴욕 베를린 런던 도쿄)도 완주했다.
하지만 홍 씨는 최근 2연간 대회 출전을 못했다. 교회 여성회장을 맡는 바람에 주말에 시간을 내지 못했다. 지난 3일 손기정마라톤에 출전해 3시간 57분대에 완주한 게 2년만의 풀코스 완주였다. 20일 서울 신도림역 도림천을 달리는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도 3시간 54분대에 완주했다. 홍 씨 등 마라톤마니아들은 매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 새벽 6시부터 7시에 출발하는 ‘공원사랑마라톤대회’를 훈련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원사랑마라톤대회 출전은 다음달 열리는 중앙마라톤을 대비해 마지막으로 긴 거리를 달린 것이었다. 2년 풀코스를 달리지 않았지만 평소 매일 달려 아직 기록이 나쁘지는 않았다.”
홍 씨는 내년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릴 예정이다.
“솔직히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나만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 한국 나이 39세 땐 대형 운전면허를 땄다. 49세 땐 한반도 횡단마라톤을 완주했다. 내년엔 한국나이 59세인데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할 계획이다. 나이를 먹는 게 안타까워 뭔가 이정표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 잡은 계획이다.”
산타아고 순례길은 프랑스에서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야곱(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이다. 배를 타는 구간까지 900여 km. 홍 씨는 “보통 걸으면 4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난 친구들과 달리며 걸을 계획이기 때문에 20일에서 25일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홍현분 씨 제공. 세계 6대 마라톤 완주기념메달.
홍 씨는 개인적으로 잡은 장단기 목표를 위해 매일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힘겨운 훈련이 아니다. 운동은 즐겁고 재밌는 일상생활이다.
“최근엔 목동마라톤클럽에 나가서 스피드 훈련을 한다. 좀더 기록을 당기기 위해서다. 난 매일 웨이트트레이닝도 1시간 씩 한다. 개인 PT(퍼스널 트레이닝)도 받고 있다. 근육이 조화롭게 발달해야 부상 없이 즐겁게 달릴 수 있다. 하루 3시간은 운동에 투자하고 있다.”
홍 씨가 즐겁게 달리니 주변에서 ‘나도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한단다.
“마라톤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고독이 내 그림자다’라고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구력과 끈기가 있어야 마라톤들 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시작한 뒤 하기 싫다고 안하면 안 된다. 덮고 추울 때 훈련하러 나가려면 도살장에 끌려 나가는 듯한 마음이지만 그것을 참고 훈련해야 즐겁게 마라톤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100세 시대 건강에 대해 물었다.
“사람은 나이 먹을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운동을 하면 달라진다. 운동은 삶에 활력을 준다. 자신감도 준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밥 먹듯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의 생활화, 습관화가 중요하다. 솔직히 나이 들면 안하던 운동을 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힘든 것을 참고 이겨내면 즐겁고 건강한 삶이 펼쳐진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나. 지금 바로 운동을 시작하자. 그래서 나른한 삶을 확 바꿔보자.”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