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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질병 분류해 치료” vs “병으로 낙인 찍으면 부작용 커”

입력 | 2018-10-29 03:00:00

복지부-문체부 ‘질병코드 지정’ 대립




“한번 자리에 앉으면 5시간 이상 게임만 했어요. 게임할 때마다 무척 예민해 보였어요.”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를 지켜본 한 아르바이트생의 증언이다. 경찰은 김성수의 게임중독 성향을 조사 중이다. 지난해 10월에는 게임에 빠진 부모가 생후 11개월 된 영아를 방치해 죽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이 부모는 하루 13시간씩 게임에 빠져 살았다.

이에 보건당국은 게임중독(과몰입)에 ‘질병코드’를 부여해 체계적으로 치료, 관리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류의 한 축인 게임산업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할지를 두고 논쟁이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우리도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WHO는 6월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고, 게임으로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는데도 게임을 지속하는 행위가 12개월 이상 반복되면 질병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질병분류(ICD) 11차 개정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이 내년 5월 세계보건총회에서 확정되면 게임중독은 ‘공식 질병’이 된다.

한국질병분류코드(KCD)는 ICD를 기초로 만든다. ICD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확정하면 국내에서도 게임중독은 질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복지부는 내부적으로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하기 위한 사전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으로서 게임중독의 정의와 증세’부터 세밀히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게임중독 환자와 위험군 수 △치료 방법과 예방법 △건강보험 적용 방법 등을 두고 각종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중독은 마약이나 알코올 등 ‘물질 중독’과 도박 등 ‘행위 중독’으로 나뉜다. 마약, 알코올, 도박 중독에는 모두 개별 질병코드를 부여해 치료 시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게임중독에도 질병코드를 부여하면 국내 게임중독 환자 수 등 구체적 통계가 나오고, 이를 토대로 체계적인 치료 및 예방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질병코드 부여를 반기는 분위기다. 중3 아들을 둔 주부 송모 씨(42)는 “아이가 매일 게임에 빠져 있어 걱정이 크다”며 “정부가 게임중독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책을 세워준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관리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작지 않다. 당장 복지부와 달리 문화체육관광부는 질병코드 부여를 반대하고 있다. 문체부는 조만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게임 이용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 자료에는 ‘게임중독 증세는 게임 자체보다 부모 및 친구 관계, 학업 스트레스 등 다른 요인이 더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 관계자는 “게임중독은 교육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며 “질병코드를 부여해 ‘병’으로 낙인찍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엔 게임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내 콘텐츠 산업 수출 총액 7조8700억 원 중 게임이 차지한 비중은 56.7%로 1위다.

의학계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게임중독 시 일반적으로 우울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다른 질환이 함께 나타난다. 하지만 이게 게임 때문인지, 반대로 우울증이나 ADHD 때문에 게임중독 증세가 나타나는 것인지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도박을 하면 뇌에서 도파민(호르몬)이 분비돼 중독되듯 게임중독도 같은 원리인 만큼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제대로 관리해야 장기적으로 게임산업에 미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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