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까talk]대중문화계 ‘乙의 눈물’
신인 배우나 배우 지망생들은 이런 일이 흔하다고 입을 모은다. 10대 보이밴드 ‘더 이스트라이트’에 대한 프로듀서의 폭행 사실이 폭로되면서 출연료 미지급, 성추행, 폭행 등 문화계에 만연한 ‘을(乙)의 설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술계의 불공정 거래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공정상생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 신문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배우 민지혁은 영화 ‘임의 침묵’ 제작사가 오디션 배우들에게 면접비 1만 원을 요구했다고 지난달 폭로했다. 연출을 맡은 한명구 감독은 “오디션비는 관행이며 지원자들의 간식비로 다 쓰였다”고 반박했다. 배우 지망생들도 “면접비 요구는 종종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한 영화계 구인구직 온라인 사이트에는 1만 원 선의 면접비를 요구하는 공고가 적지 않다. 신인 배우 김모 씨(25·여)는 “면접비 5000원을 준비하지 못하고 면접장에 갔는데 ‘이 정도도 못 내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고질적 문제인 출연료 미지급도 여전하다. 작품에 출연하는 것 자체를 ‘스펙’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신인 배우 B 씨(25·여)는 “정당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이 돼도 ‘사전에 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제작사에서 화를 낸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제작사가 계약서 작성을 거론하지 않으면 출연료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고 여길 정도다. 원로 배우 이순재 씨도 “몇 년 전 출연료를 받지 못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인을 위한 표준전속계약서를 마련해 적정 전속기간, 기본권 등을 명시했다. 하지만 이는 권고 사항에 불과해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다. 문제를 제기해 신분이 드러나면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현실도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문화계에서는 약자인 신고인이 권력을 쥐고 있는 피신고인과 얼굴을 맞대고 피해를 입증하는 절차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제작사, 소속사의 부당 행위에 대한 감시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