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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의지 없고, 시대 흐름 못 읽고' 스스로 마이너 자처한 후지필름 – 1부

입력 | 2018-10-29 11:31:00


우에노 타카시 우에노 타카시 후지필름 전자영상사업부 상품기획 총괄 매니저.(출처=IT동아)


"서드파티가 (X마운트 렌즈를) 만들고 싶다고 하질 않는다. 개인적으로 서드파티 렌즈 제조사들과 사이는 좋지만 한 제조사는 "X 시리즈 사용자들 어짜피 후지논 쓰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다. 서드파티 렌즈 설계자들은 후지논이 동경의 대상이라고 하는데 반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 같다. 아무튼 그들은 X 시리즈는 순정 렌즈를 좋아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결국 서드파티 제조사들이 재미를 못 보는 시장이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에노 타카시 후지필름 전자영상사업부 상품기획 총괄 매니저는 왜 후지 X 시리즈 카메라에는 서드파티(제3자) 렌즈가 없느냐는 한 매체 기자의 질문에 이처럼 답변했다. 실제로 후지필름의 미러리스 카메라 X 시리즈에는 자사가 개발한 후지논 렌즈 외에 시그마와 탐론 등 타 렌즈 제조사의 호환 렌즈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에노 타카시 매니저의 답변에는 X 시리즈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지난 2018년 10월 26일,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는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미디어 세미나 및 공동 인터뷰를 열어 '후지필름은 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를 만들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해당 내용에 대한 국내 매체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이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로 빠르게 재편될 분위기에 맞춰 이뤄진 후지필름의 반응에 많은 매체 기자들이 관심을 갖고 자리에 참석했다.

하지만 후지필름의 대답은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이유는 있었지만 변명에 가까웠고, 오히려 풀프레임 센서를 '100년 이상 된 낡고 오래된 규격'이라며 무시하는 듯한 느낌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카메라 제조사가 운영하는 플랫폼에 대한 자부심은 좋지만 타 플랫폼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자사 플랫폼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35mm 규격을 비판한 후지필름은 아직도 그 규격(35mm)의 필름을 선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후지필름이 풀프레임을 하지 않는 이유가...

우에노 타카시 매니저는 총 3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바른 크기(Right Sizing), ▲후지논 렌즈(Fujinon Lens), ▲화질 설계(이미지 품질)가 그것. 여기에서 가장 의문이 든 것이 바른 크기였다. 그는 바른 크기를 처음 이렇게 정의했다.

"너무 작아도 안 되고, 너무 커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고화질과 소형경량의 최적의 밸런스다."

이 말과 함께 자사의 미러리스 카메라 X-T3와 타사(소니 A7R M3로 추정)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를 비교했다. 자사 카메라는 대구경 단렌즈 3개와 줌렌즈 2개 등을 구성하고도 3kg 가량의 무게를 제공하지만 타사 풀프레임 시스템은 비슷한 구성을 갖추면 5.2kg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자사 카메라와 타사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와의 무게 차이를 언급하는 우에노 타카시 매니저. 크기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만 종합적인 성능과 만족도로 접근한다면 어느 쪽이 우위인지는 소비자들이 판단할 몫이다.(출처=IT동아)


렌즈 구성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줌렌즈는 16-55mm f/2.8, 50-140mm f/2.8이고 단렌즈는 23mm f/1.4, 35mm f/1.4, 56mm f/1.2 등이다. 이를 비슷한 소니 시스템으로 구현하면 SEL2470GM(24-70mm f/2.8), SEL70200GM(70-200mm f/2.8)과 SEL35F14Z(35mm f/1.4), SEL50F14Z(50mm f/1.4), SEL85F14GM(85mm f/1.4) 등이다.

세밀하게 보면 후지필름은 모두 후지논 렌즈, 소니는 자사가 직접 개발한 지-마스터(G-Master) 렌즈 3종, 칼 자이스(Carl Zeiss) 렌즈 2종이다. 가격은 후지필름이 총 893만 4,000원(본체 189만 9,000원 + 렌즈 703만 5,000원)이고 소니는 총 1,614만 4,000원(본체 389만 9,000원 + 렌즈 1,224만 5,000원)이다. 가격은 거의 2배에 가깝다.

크기를 보자. X-T3를 보니 폭 132.5mm, 높이 92.8mm, 두께 58.8mm에 무게 539g이다. 소니 A7R M3는 폭 126.9mm, 높이 95.6mm, 두께 73.7mm다. 무게는 657g.

비교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보면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는 확실히 크고 무겁다. 하지만 함정이 숨어 있다. 제원표의 크기는 최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메라에서 두께는 그립부를 포함하고 있어 이 수치 자체가 덩치가 커짐을 말하지 않는다.

우에노 타카시 매니저가 언급했던 X-T3와 소니 A7R M3와의 비교. 이렇게 보면 X-T3가 작고 가볍지만 성능이나 기능으로 고려하면 비교 대상이라 보기는 어렵다.(출처=IT동아)


이미지로 X-T3와 A7R M3를 비교해도 X-T3 쪽의 그립부가 낮게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게도 단순 비교는 어렵다. X-T3는 후지필름의 상위 모델 중 하나인 X-H1의 하위 모델로 센서 손떨림 방지 기구가 제외되어 있다. 반면, A7R M3는 센서 면적이 X-T3보다 약 2배 가까이 큰데다 5축 손떨림 방지 기구가 탑재됐다. 배터리 용량도 X-T3는 약 1,200mAh(NP-W126S) 용량인데, 소니는 약 2배 가까운 2,280mAh 용량의 배터리(NP-FZ100)을 쓴다.

단순히 비슷한 기능과 성능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후지필름은 X-T3가 아니라 X-H1을 들고 나왔어야 한다. 그렇다면 X-H1이라면 바른 크기라는 개념으로 소니와 대등하게 나설 수 있을까? 렌즈를 포함하면 당연히 후지필름 측이 유리하지만 우에노 타카시 매니저가 언급했던 '바른 크기'의 조건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후지필름 X-H1과 소니 A7R M3와의 비교. X-T3와 비교하면 A7R이 크기와 무게에서 불리하지만 고사양 제품과의 비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출처=IT동아)


X-H1은 폭 139.8mm, 높이 97.3mm, 두께 85.5mm로 기준으로 보면 모든 면에서 소니 A7R M3에 뒤처진다. 무게도 X-H1은 673g으로 657g인 소니 카메라에 비해 조금 더 무거워진다. 결국 바른 크기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저 최근 출시된 X-T3를 알리기 위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화질로 봐도 그렇다. 카메라에서 화질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이를 수치화해서 쉽게 참고하도록 일부 매체들이 해상력 차트와 기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참고만 할 것이지 절대적인 성능의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후지논 렌즈와 소니의 칼자이스, 지-마스터 렌즈 모두 어느 것이 뛰어나다 말할 수 없다. 역사로 치면 칼 자이스 역시 후지논 못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 색감이 의미가 있는가?

화질 설계에 대한 설명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필름에 기반한 후지만이 색을 구현해 왔고 이를 디지털로 가져오면서 혁신을 이뤘다는 식으로 자신들만의 치적을 강조했기 때문. 심지어 "필름 시절 카메라들은 좋은 제품이 많았어도 색을 만들지 않았다"고 언급한 부분은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비록 필름이 그 때 당시 중요한 역할 중 하나를 담당한 것은 맞아도 이는 카메라 렌즈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이를 의식했는지 우에도 타카시 매니저는 "화질은 색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디지털 카메라는 색재현과 계조, 화이트 밸런스의 조화가 중요하다. 하지만 셋이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렌즈가 없다면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는 맞는 이야기다. 색 재현과 이를 표현하기 위한 넓은 계조, 흰색을 잘 검출해 표현하기 위한 화이트 밸런스의 조화는 디지털 사진에 있어 중요한 요소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 외에도 디지털 화질에 필요한 요소는 '감성'에 있다.

최근 스마트폰 카메라를 살펴보면 일부 심도 카메라를 활용해 배경 날림을 DSLR 카메라처럼 구현하고자 노력 중이다. 센서가 작고 렌즈 구현에 약점이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지만 이를 극복하고 DSLR 수준의 감성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기능을 탑재하고 있고 그 중 하나가 배경 날림이다. 색감은 여러 필터를 적용하거나 필요한 도구를 적용해 원하는 색감을 구현하고 있다.

어도비 라이트룸(출처=IT동아)


후지필름은 스스로를 '사진 메이커(제조사)'라고 표현했고 이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벨비아, 프로비아 등 유명한 필름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사 카메라에는 이 필름의 색채를 구현해 촬영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중요한 것은 필름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대다수의 젊은 사진 세대들은 후지필름의 색채를 이해해 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똑같지 않아도 비슷한 수준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사진에 재미를 부여하는 여러 애플리케이션들이 있어서다.

우에노 타카시 매니저는 "요즘 시대 카메라는 렌즈 외에도 소프트웨어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를 제어하는 영상엔진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타 제조사들과 비교해 후지필름의 영상엔진과 소프트웨어가 속도나 완성도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 분야에서 가장 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는 단연 소니다. 센서를 자체 설계 및 생산 가능한 능력을 바탕으로 처리 속도를 개선하고 이를 영상엔진에 반영해 화질과 기능을 끌어올렸다. 최근 출시된 A7 시리즈와 지난해 공개한 A9만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도 캡처원(Capture One)과 협력해 세밀한 후보정이 가능하다.

캐논과 니콘도 이 분야에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들이 개발한 디직(DiGiC)과 엑스피드(Expeed) 영상엔진은 기능이나 성능면에서 최고 수준임을 인정 받고 있다. 렌즈도 마찬가지다. 소니와 캐논, 니콘 모두 새로운 플랫폼(풀프레임 미러리스)에 맞는 렌즈와 마운트를 개발해 공개했다. 후지필름만 플랫폼에 맞춘 렌즈 설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

풀프레임 미러리스, '안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후지필름은 풀프레임 미러리스를 '안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그들이 말하는 '바른 크기'와 '균형(화질, 크기)'을 갖춘 X 시리즈가 있고, 35mm 판형보다 약 1.7배 큰 판형(중형)을 채택해 '화질'에 초점을 맞춘 GFX 시리즈가 있다. 두 제품이 있어 풀프레임 센서 기반의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매력적이라고 판단되면 후발주자라도 뛰어들 수 있는 것이 카메라 시장 아닐까? 뒤늦게 풀프레임 미러리스 시장에 뛰어든 니콘과 캐논도 사정은 있을지언정 매력적인 시장이라 판단했기에 늦더라도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 체제를 갖춘 것이다.

심지어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았던 카메라 제조사들도 연합을 구축해 풀프레임 미러리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라이카와 시그마, 파나소닉이 주인공이다. 세 브랜드는 라이카 L 마운트를 중심으로 연합을 구성해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를 선보이기로 했다. 파나소닉과 시그마는 2019년 내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후지필름보다 시장 점유율이 낮은 브랜드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시장의 흐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후지필름은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지 않는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분류해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 자사 신제품 홍보와 연관되어 있었다.(출처=IT동아)


그렇다면 후지필름이 풀프레임 미러리스를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렌즈'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센서 제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를 수급할 수만 있다면 카메라 본체 설계와 제조에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렌즈는 쉽지 않다. 소니도 그렇고 후발주자인 캐논과 니콘 모두 부족한 렌즈는 기존 DSLR에 쓰던 것을 호환하도록 어댑터를 설계했다. L 마운트 연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라이카 렌즈도 있고 시그마 역시 기본적으로 렌즈를 제조하고 있어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후지필름은 그렇지 않다. SLR 카메라 기반이 없어 호환 어댑터를 제공할 수 없고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후지필름도 2008년까지 DSLR을 했었다. 그러나 니콘 카메라 기반이어서 이를 바탕으로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 진출한 것은 2012년이다.

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를 만들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후지필름은 약 3시간이라는 시간을 할애했으나 자신들의 약점만 더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준이라도 명확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아쉬운 3시간이었다.

동아닷컴 IT전문 강형석 기자 redb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