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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단독]“병사가 강간한 여성 알고보니…” 황당무계한 국방부 만화

입력 | 2018-10-29 11:51:00

● “미성년자 성매매 알고 보니 교복 입은 중년여성”
● 여자 후배에게 “맛있겠다”라고 말해
● 지하철 몰카범에게 경찰 “고생이 참 많으시네요”
● 국방부 “육해공군 일선부대에 10만부 비치”
● “성폭력예방 교육 자료로 사용”
● 여성민우회 “성폭행 희화화…교육 자료로 부적절”




국방부의 성폭력예방 교육 자료인 ‘동작 그만’ 만화가 오히려 성폭력을 희화화하는 황당무계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2016년 이 만화를 육·해·공군 일선 부대에 10만부 정도 배포해 지금까지 비치해두면서 병사들이 읽도록 하고 있다.

이 만화의 ‘강간’ 편에서 상병 강성기는 술이 취한 상태로 부대로 복귀하는 도중에 00상회라는 가게를 찾았다. 혼자 가게를 지키는 주인의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 딸을 강간했다. 강 상병이 이 사실을 상관에게 고백하자 상관은 “복귀전에 사고를 치면 어떻게 해”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딸은 오래 전에 자살했으며 강 상병은 귀신을 강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성기의 선임은 강성기에게 “귀신 예뻤냐? 안 예뻤냐?”라고 물었다.

이런 만화 내용에 대해 육군 모 부대 소속 한 병사는 “부대 내 도서실에 비치돼 있어 많은 병사가 이 만화를 읽어봤다. 내용이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예방교육 관계자는 “이 만화는 병사가 저지른 강간범죄를 ‘귀신에게 홀렸다’ ‘귀신을 강간했다’는 웃긴 에피소드로 그리고 있다. 다른 병사는 ‘그 귀신이 예뻤냐’고 굉장히 부적절한 질문을 한다. 국방부가 성폭력을 희화화하고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확산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피해자가 마치 교태를 부리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묘사하는 등 강간 가해자의 시선에서 강간사건을 그리고 있다. 또한 가해자는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성폭행사범들의 흔한 변명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만화의 ‘미성년자 성매매’ 편에서 휴가병과 그의 친구는 “25세 이상은 여자가 아니다”며 “휴대폰 앱을 통해 많이들 만나는 모양이던데”라는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이 휴가병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17세 여고생과 성매매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가보니 교복을 입은 중년여성이 나와 있었다. 이 여성이 “채팅한 군인아저씨 맞죠?”라며 다다가자 이 휴가병은 “사람을 잘못 봤다”고 부인했다.

이런 만화 내용에 대해 해군 한 부대의 병사는 “‘25세 이상은 여자가 아니라며’라는 대사나 국군 병사가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하는 설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예방교육 관계자는 “이 만화는 강간과 미성년자 성매매 같은 성폭력을 그리면서 ‘알고 보니 귀신이더라’ ‘알고 보니 교복 입은 중년여성이더라’라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가져간다. 성폭력예방이라는 기획의도와 전면 배치된다. 독자인 병사들이 이 만화를 보면서 무엇을 배울지 우려된다”고 했다.

이 만화의 ‘강제추행’ 편에선 병사 변태랑이 여자 후배에게 “맛있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뿐이야’ 편에선 여행용가방 안에 남자가 직접 들어가서 소형카메라로 지하철 여자 승객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경찰은 “요즘 소형카메라 좋은 거 많이 나왔는데 고생이 참 많으시네요”라고 몰카범을 오히려 두둔하는 듯한 표현이 등장한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여성단체들은 지난해 국방부에 ‘병사 대상 성폭행예방교육 교재를 공개적으로 검증받으라’고 요구했으나 국방부가 거부했다. 이 만화는 국방부가 성폭력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아무 고민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2017년 성범죄를 희화화하는 병무청 마스코트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성폭행예방교육 자료로 쓰기 위해 2016년 이 만화를 육·해·공군 일선 부대에 10만부 정도 배포해 반영구적으로 활용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신세대 병사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제작했다. 우리 군내 검수를 거쳤고 여성가족부의 검토까지 받아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세대 병사들이 성폭력문제를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허준 고려대 경제학과 2학년 danieljunhur@hotmail.com
허만섭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이 기사는 신동아 12월호 지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