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깊어진 한국 증시의 시계가 2016년 12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코스피는 이달 들어서만 347포인트(14.8%) 급락하며 힘없이 2,000 선이 무너졌다.
미국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악재에 국내 대표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현실화하면서 투자 심리가 극도로 얼어붙은 탓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내외 불안 요인들에 비해 국내 증시가 과도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시장 전체를 휘감은 공포가 투매를 부르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의 ‘셀 코리아’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9일 코스피 2,000 선이 붕괴된 것은 대내외 악재로 증시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3분기(7~9월) 실적을 발표한 국내 상장기업들의 ‘어닝 쇼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날 K뷰티를 이끄는 아모레퍼시픽은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3% 급감했다고 발표하면서 주가가 12.8% 곤두박질쳤다. 앞서 현대자동차도 지난해보다 76.0% 급감한 영업이익을 내놨다.
이날 바이오주 비중이 높은 코스닥지수가 5% 넘게 하락한 것도 이런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자들이 신성장산업인 바이오 분야에서도 새로운 먹을거리 창출이 힘들어졌다고 판단하고 증시를 이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증시가 미국, 중국 등 해외 주요 증시가 하락할 때 외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급락하고, 이들 증시가 반등할 때는 힘을 쓰지 못하는 ‘외딴섬’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이날도 장 초반 1% 가까이 상승했던 코스피는 중국 증시가 하락 출발하자 급격히 하락세로 돌아서 결국 2,000 선이 무너졌다.
반도체 홀로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구조 속에서 고용, 투자, 소비 등 국내 경제지표가 빠르게 악화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커지고 있다. 박형중 대신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은 “아직 연간으로는 외국인 자금이 10조 원가량 순유입 상태지만 다른 신흥국 대다수는 순유출로 돌아섰다”며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이 커 그 충격파를 어떻게 이겨낼지가 향후 증시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시 급락이 기업과 가계의 투자 및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앞서 26일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는 99.5로 전달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경기를 비관적으로 인식한 소비자들이 그만큼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 급락이 경기 둔화 우려를 키워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