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정치부 차장
“헤이 클로이, 오늘 날씨 어때?” 박 의원이 최대한 사투리를 자제하며 클로이를 불렀다. 하지만 클로이는 또다시 묵묵부답. “눈만 껌뻑거리네. 에이 안 되겠다.” 이내 포기한 박 의원이 휴대전화를 켜고 “오케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라고 물었다. 같은 질문에 구글의 AI ‘구글 어시스턴트’는 “오늘 낮 기온은…”이라며 곧장 답을 내놓았다.
한국 AI가 미국 AI보다 영어도 아닌 우리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이유를 박 의원은 규제에서 찾았다. 국내 기업은 정부의 ‘바이오 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종 서비스를 하면서 음성 정보 등 바이오 정보를 수집하려면 사전에 사용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사용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서비스 사용을 거부할 수 없어서 실제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외국 기업인 구글은 그런 규제를 받지 않아 안드로이드 휴대전화 사용자로부터 방대한 양의 각종 음성, 오디오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얻고 있는 상황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유튜브가 (동영상 시장의) 80∼90%를 장악했듯이 AI 서비스 로봇도 구글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박 의원의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회에서 진행 중인 일명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개정 논의를 보면 그렇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면서 가명정보(개인정보에서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누구의 정보인지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삭제한 것)를 당사자 동의 없이도 시장 조사나 상품 개발 등 상업적 목적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조차 법안에 ‘상업적 목적’이라는 표현을 넣는 데 부정적인 의원들이 적지 않다. 그런 규제 완화가 기업에 특혜가 될 수 있다거나, 개인정보를 다량 보유한 기업이 ‘빅 브러더’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를 활용한 빅데이터는 금융과 의료, 유통 등 다양한 산업에서 핵심 원료로 꼽힌다. 빅데이터 활용 규제를 풀지 않으면 데이터 경제 활성화는 불가능하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는 안전장치를 튼튼하게 만들어서 해결하면 될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말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강조했듯이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분명하게 세워 “데이터를 가장 잘 다루는 나라”가 되면 될 일이다.
규제완화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구글 어시스턴트는 똑똑해지고 클로이는 어눌해질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글로벌 기업이 우리 정보를 잔뜩 움켜쥔 빅 브러더가 돼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