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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기다린 할아버지에 ‘기림배지’ 팔아 수익금 전달한 여학생

입력 | 2018-10-30 18:14:00

2년간 제작·판매 후 기부해 온 17세 전성현양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에게 100만 원 전달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해 온 전성현 양(17) 이 제작한 배지. © News1

“함께 싸우고 기억하겠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로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3년8개월만에 최종 승소하고 30일 대법원을 나서는 이춘식옹(94) 앞에 한 여학생이 다가와 흰 봉투를 내밀었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다가 이날 선고에 맞춰 서둘러 귀국했다는 전성현양(17)은 지난해 강제징용 사건을 접하고 이를 기리는 배지를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을 기부해왔다. 전양은 이옹에게 직접 편지와 함께 100만원을 전했다.

전양이 배지와 함께 이옹에게 “같이 싸우고 기억하겠다고 적은 것인데 이걸 팔아서 모은 돈이다,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며 5만원권 20매가 담긴 봉투를 건네자 이옹은 “너희들 써라, 이 돈을 내가 어떻게 쓰느냐”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초부터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해 배지를 만들어 개당 5000원~7500원에 3차례 판매를 진행한 전양은 앞서 1·2차에서 모인 15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했다. 3차 수익금은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 직접 이옹에게 전달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해 온 전성현학생(17)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94)에게 직접 쓴 편지와 수익금을 전달하고 있다. © News1

배지를 제작하게 된 취지와 관련해 전양은 “처음 사건을 알게 되고 기부할 방법을 찾아봤다. 위안부 사건의 경우 소녀상 등 관련 상징물이 많은데 강제징용은 나오는 게 없었다”며 “이 사건을 아는 대한민국 학생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징용 이야기를 듣고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며 “배지 디자인에는 함께 싸우고 기억하겠다는 의미와 어두운 밤에도 달처럼 밝히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옹은 1941년 현재의 전양과 같은 열일곱살 나이에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보국대에 지원했지만 2년간 하루 12시간씩 철재를 나르는 단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임금은커녕 기술을 배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일본 패망 후 돈을 받기 위해 제철소를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원고 4명 중 여운택옹과 신천수옹도 1997년 12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체불임금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최종 패소했다. 이옹 등은 2005년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일본의 확정판결이 한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어 효력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하급심을 뒤집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판단에 따라 “원고들에게 각 1억원씩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피해자들의 첫 승소판결이었다. 하지만 일본기업이 불복하면서 사건을 다시 접수한 대법원이 이후 판단을 5년 넘게 미루는 동안 원고 중 생존자는 이옹 한 명만 남았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옹과 이미 고인이 된 여운택·신천수·김규수옹 등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상고심이 시작된 지 5년2개월만이다. 이번 판결로 신일본제철은 피해자 1인당 1억원씩을 지급하게 됐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