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평등 문제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영원한 숙제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는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거나 양극화되는 현상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무기력해지고 냉소적인 태도를 띠게 됩니다. 사회 통합이 깨지고 계층 간 갈등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으로 감당해야 할 비용이 커집니다.
고등학교 통합사회 대단원 중 하나가 ‘정의(正義)’입니다. 이 단원에서는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정의에 합치되는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사회 및 공간 불평등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부모의 계층적 지위와 자신의 미래 계층적 지위를 비교해 보라는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 세대의 계층적 지위와 자신의 지위가 같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세대 간 상승 이동을 예상한 학생은 한두 명에 불과했고, 서너 명의 학생은 하강 이동을 예상했습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이동의 가능성이 차단되다시피 한 닫힌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흙수저가 열심히 노력하면 은수저도 되고 금수저도 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수저 담론은 불행하게도 닫힌 사회를 상징하며 냉소주의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최근 1년 사이에 벌어진 부동산 가격 폭등 속에서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에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양극화와 계층 고착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얼마 전 새마을금고 강도 사건이 터졌습니다. 자녀의 취업을 위한 부정 청탁, 선거에 이기기 위한 댓글 조작과 중상모략, 몇몇 학교에서 터진 시험 부정, 사립유치원의 회계 부정 등이 이슈가 됐습니다. 별개의 사건이지만 머튼은 이러한 일탈을 아노미 현상으로 설명했습니다.
머튼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목표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사회에서 인정하고 있는 수단의 괴리를 아노미 상태로 진단했습니다. 그 아노미 상태에 대한 적응 방식 중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집착하면서 제도화된 수단을 거부하는 유형을 혁신형 적응 방식으로 분류했습니다. 즉, 목표와 수단 간의 괴리가 클 때 제도화된 수단을 거부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 일탈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머튼은 일탈을 개인적 문제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유기체와 같은 사회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로 봤습니다. 국가는 닫힌 사회에서 좌절했을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려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 역량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정의의 확장을 지향하는 국가라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