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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화학물질 제출 법안, 산업계의 영업비밀 노출 우려 없도록

입력 | 2018-10-31 00:00:00


정부가 어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법이 정한 유해·위험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기업은 이 화학물질의 정보와 위험성 등을 담은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의무적으로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질안전보건자료에 포함된 유해·위험 화학물질 정보를 영업비밀로 판단해 공개하지 않으려면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또 영업비밀로 승인받지 않은 정보 일부를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도 기업이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보관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부 제출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또 기업 스스로 이 자료의 영업비밀 여부를 판단해 공개와 비공개를 결정해 왔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영업비밀 여부를 승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이 자의적으로 화학물질 성분 공개를 결정한 탓에 비공개 비율이 68% 수준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근로자가 유해물질 노출 위험에 있어도 이를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근로자의 산업재해 입증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무리 근로자의 건강권을 우선시하는 고용부가 주도했다고 해도 법 시행 시 예견되는 부작용이 크다. 화학물질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제품 제조에도 쓰이는 소재다.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성분만으로도 핵심 기술을 유추할 수 있다. 경쟁 기업의 손톱만 한 정보라도 빼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것이 글로벌 경쟁의 현실이다. 산업계가 화학물질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면 우리 기술을 공짜로 해외에 넘겨주는 셈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당연하다. 성분 공개를 꺼리는 해외 기업이 우리에게 원료 공급을 중단하거나 철수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규제를 없애 기업을 독려해도 모자랄 판에 족쇄를 하나 더 채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