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혈세 구멍’ 사설 요양원
《 “요양원을 세우면 3년 안에 빚을 갚는다.” 요양원 관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빠른 고령화로 노인 재활, 돌봄 서비스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요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전국의 민간 요양원은 3810개. 이 기관들의 운영비 중 80%는 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노인장기요양보험료로 충당한다. 이 돈이 제대로 쓰이면 상관없지만 요양원 대표가 외제차를 굴리고 술값으로 탕진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요양원은 ‘제2의 사립유치원’이란 지적이 나온다. 》
지방 A요양원의 환자들은 항상 답답함을 호소했다. 요양원 측은 입소 당시 ‘간호사 2명, 요양보호사 5명을 배치했다’고 설명했지만 몸이 불편해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간호 인력을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이 요양원은 간호 인력의 근무시간을 허위로 부풀렸다. 간호사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일하게 해놓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오후 6시까지 근무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했다. 요양원은 환자 수에 따라 적정 인력을 갖춰야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식사까지 만들도록 강요받아 병실 못지않게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A요양원은 이런 방식으로 3년간 보험 급여 2억 원가량을 부당하게 챙겨오다 올해 7월 보건당국에 적발됐다.
○ 유치원 비리와 똑 닮은 요양원
요양원은 재활과 돌봄에 초점을 둔 생활시설이다. 노인요양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을 합친 형태로 치료가 주목적인 요양병원과는 다르다. 요양병원은 노인 질환을 앓거나 외과 수술 후 회복이 필요한 노인이 주로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하는 의료기관이다. 따라서 다른 병원들처럼 환자를 돌보는 비용 일부(평균 65%)를 건강보험으로 충당한다.
반면 요양원은 요양비의 80%를 국민이 내는 노인장기요양보험료에서 충당한다. 환자 본인은 전체 비용의 20%만 내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요양병원과 달리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환자만 들어갈 수 있다. 또 요양원은 요양병원과 달리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다.
○ 정원의 10% 넘기기 일쑤
80대 어머니를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 모신 회사원 김모 씨는 “중증 치매와 당뇨병을 앓고 계셨는데, 어느 날 면회를 가니 낙상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 혈관이 막혀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촉탁의가 입소자 수십 명을 돌보면서 형식적 진료만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환자 수를 늘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D요양원은 보건당국에 시설 내 20명을 수용하겠다고 등록했지만 실제 장기요양 등급을 받지 않은 환자 3명을 더 입소시켜 수천만 원의 장기요양 급여를 타냈다가 적발됐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상당수 요양원이 관행처럼 정원의 10%를 넘겨 환자를 받는다”며 “정작 비용이 드는 간호 인력은 줄여 환자가 제대로 된 관리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나랏돈은 들어가지만 감시체계는 허술
환자가 입소하는 방식의 사설(법인 제외) 요양원은 지난해 말 기준 3810곳으로 2010년(2281곳)에 비해 67% 늘었다. 가정을 방문해 고령자를 돌보는 재가(在家)서비스 업체까지 합치면 전국에 약 2만 곳에 달한다. 이런 장기요양시설에 지원한 노인장기요양 급여는 지난해에만 4조9714억 원에 이른다. 한 해 사립유치원에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 2조 원의 두 배가 넘는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있으면 요양원 설립이 가능한 점도 요양원 남발과 질 저하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요양원을 세우려면 전문 교육기관에서 2년 가까이 정규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실제 요양시설에서 근무한 경력 등을 추가해 설립 요건을 강화해야 제대로 된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김철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