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산업2부 차장
부산 일가족 살해,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같은 흉흉한 사건 속에서 마음을 따스하게 해준 뉴스가 하나 있었다.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400억 원 상당을 고려대에 기부한 김영석(91), 양영애 씨(83) 부부의 이야기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못 간 양 씨는 “어린 학생들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름난 부자들이 기부하는 거액 기부도 의미 있지만 평생 덜 입고, 덜 먹고, 덜 쓰면서 모은 재산을 선뜻 내놓는 일반인의 기부 소식은 더욱 감동적이다. 개인 기부가 80%가 넘는 미국에 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국에서도 일반인의 기부 소식이 잦아지고 있다.
올 8월에는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의 추락 사고로 숨진 장병들의 유족들이 조의금 5000만 원을 해병대에 기부했다. 2015년 교통사고를 수습하던 중 크게 다쳐 3년간 투병해 온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김범일 경감은 최근 명예퇴임하면서 2000만 원을 공무수행 도중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을 돕는 재단에 내놨다.
2007년 개인 기부문화 활성화를 목표로 시작된 아너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 회원과 기금 총액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회원 수와 기금 총액이 각각 1800명, 2000억 원을 넘었다. 아직은 고소득층 사회 저명인사들이 중심이지만 조금씩 기부에 관심 있는 중산층의 참여도 늘고 있다.
올해 5월 방한한 미국의 신발 브랜드 탐스의 짐 에일링 최고경영자(CEO)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탐스의 기부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분들”이라며 “탐스가 아이들에게 기부한 7500만 켤레 중 500만 켤레는 한국 소비자들이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탐스는 신발 한 켤레를 팔 때마다 제3세계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원 포 원(one for one)’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일상 속 기부를 통해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까지 행복하게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돈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해 사회에 기여하는 젊은이도 많다. 이번에 고려대에 거액을 기부한 노부부를 보면서 “나중에 돈을 벌면 나도 남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도 많았다. 감동적인 기부 선행이 가져오는 선순환이다. 아름다운 기부로 깊은 울림을 전한 모든 이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