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소송 4인중 유일생존 이춘식씨

이춘식 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관계자들이 30일 오후 상고심 선고에 앞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을 들고 있는 왼쪽 끝의 두 남성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21년간 이번 소송을 도운 일본인 우에다 게이시 씨(왼쪽)와 나카타 미쓰노부 씨. 뉴시스
일제강점기 전범 기업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 씨(98)는 30일 오후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대법정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흐르는 눈물에 울컥울컥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하고 청력도 안 좋지만 대법원 선고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서울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법원에 처음 소송을 제기한 2005년 이 씨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동료 3명과 함께했다. 하지만 재판 도중 여운택 신천수 씨가 먼저 숨졌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억울함을 풀자’고 다짐했던 김규수 씨도 올해 6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씨는 혼자라는 사실을 이날 대법원 선고 직전 처음 알았다. 그의 건강을 해칠까 봐 주변 사람들이 김 씨의 부고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1941년 대전에서 보국대로 강제 동원돼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제철(신일본제철의 전신) 가마이시제철소에서 일했다. 오전 6시 30분부터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 뒤섞거나 대형 파이프 속에 들어가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노역을 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도주하다 발각되면 구타를 당했다. 이 씨는 일본이 패전한 뒤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씨는 대법원 선고 직후 “지금이라도 선고했으니 괜찮다. 일본에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의 만행과 내 어린 시절의 고역을 역시 내 나라의 법원에서 알아줬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정을 찾은 원고 김 씨의 부인 최정호 씨(85)는 “감회가 깊다. 기왕이면 일찍 좀 서둘러 주셔서 본인이 그렇게 한이 되었던 게 마무리된 것을 봤더라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 3명도 대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봤다. 처음 소송을 냈던 원고 5명은 모두 세상을 떠나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신일본제철 소송 승소로 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 유족들도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전주영 aimhigh@donga.com·김동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