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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원정출산과 美 출생시민권

입력 | 2018-11-01 03:00:00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와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자제들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원정출산 목적지는 주로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 산모들의 원정출산 행렬도 끊이지 않는 나라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내 원정출산 시장만 1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미국은 속지주의에 입각해 자국에서 출생한 아이에게도 자동으로 출생 시민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한 인터뷰에서 “미국은 어떤 사람이 입국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85년간 모든 혜택을 누리는 시민권자가 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라며 폐기를 위한 행정명령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미국 내 불법 이민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남미 이민자의 원천 차단을 겨냥한 것이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출생시민권을 주는 국가라는 말은 틀렸다. BBC에 따르면 캐나다 멕시코 등 30여 개국이 출생시민권을 부여한다. 특히 캐나다는 중국인의 원정출산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병원에서 신생아 5명 중 1명이 비거주 중국인의 자녀로 드러나면서 야당은 이를 막기 위한 입법을 벼르고 있다. 당장 미국에서도 트럼프의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 1868년 수정헌법 14조 첫 항의 원칙을 대통령이 간단히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부터 엇갈린다. 공화당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행정명령으로는 이를 없앨 수 없다고 반박했으니 결국 최종 판단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도 출생시민권을 언급하는 등 반(反)이민 정책으로 지지층을 다졌는데 다음 주 중간선거를 앞두고 남은 임기의 성패를 좌우할 카드로 이를 다시 꺼내 든 것 같다. 현재 미국으로 향하는 3500여 명의 중미 출신 이민행렬에 맞서 국경에 5000명의 군을 파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5년 한 여론조사에서는 출생시민권 폐지에 대해 반대 60%, 찬성이 37%였으나 지금 상황이라면 그 비율은 달라질 터다. 어쨌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녀에게 미국 시민권을 선물하려는 한국 부모들의 극성도 이참에 사라지려나 모르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