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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 브루니 “일곱살 딸 BTS에 푹… 왜 떼어놓고 가냐고 울어”

입력 | 2018-11-02 03:00:00

첫 방한 카를라 브루니 단독인터뷰




1일 오후 본보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 들어오는 프랑스의 전 대통령 부인인 싱어송라이터 카를라 브루니. 그는 “무명 모델 시절 날 알아봐준 잔니 베르사체에게 감사한다. 명예는 때로 사라지지만 우정과 사랑의 감정은 영원한 것”이라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에 와보니 이해가 되네요. 이곳은 파리처럼 현대와 전통이 환상적으로 섞인 곳이더군요. 역사를 중시하는 프랑스인과 닮았어요.”

레드와인색 셔츠의 단추는 두어 개 풀어져 있었다. 딱 붙는 청바지에 진보라색 벨벳 재킷. 파리지엔의 ‘프렌치 시크’ 패션에 1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는 런웨이로 바뀌었다.

“봉주르, 앙샹테(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마음을 훔치는 미소란 이런 걸까. 목소리는 미풍 같고 비주(프랑스식 볼 키스)는 따뜻했지만, 악수하는 손아귀 힘은 남달랐다. 175cm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선명한 이목구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51)를 동아일보가 단독으로 만났다.

재클린 케네디 이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퍼스트레이디. 2, 3일 내한공연을 펼치는 브루니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10월 31일 서울에 온 브루니는 2010년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진작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 “외규장각 의궤 반환 당시 남편의 결연한 표정 못 잊어”

미국 월간지 ‘배니티 페어’가 2008년 9월 공개한 사르코지-브루니 부부 사진. 사진 출처 배니티 페어 

“한국 문화 하면, 프랑스에서 반환한 조선왕실 외규장각 의궤부터 생각납니다. 2010년 남편의 단호한 표정을 잊을 수 없거든요. 관료들의 만류가 심했지만 ‘이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제게 말했어요. 어떤 정치·외교 사안보다 더 강경했던 그의 태도를 기억해요.”

브루니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베테에스(BTS·방탄소년단)!”였다.

“일곱 살 딸이 자기를 왜 떼어놓고 가느냐며 울더군요. BTS에 푹 빠졌거든요. 열두 살 조카도 난리예요. 콘서트 티켓을 구해 달라기에 난 힘이 없다고 했죠. 슬퍼하더군요, 하하.”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2008년 결혼은 ‘정치와 사생활이 분리된 엘리제궁을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타블로이드지의 무대로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뛰어난 패션 감각과 미모로 영부인 외교에 앞장선 브루니는 2012년 5월 사르코지의 퇴임과 함께 엘리제궁을 나왔다. 요즘엔 파리 자택에서 아이를 키우며 산다.

“궁에서 나오고 달라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대통령 부인으로 사는 게 고단하지 않았느냐고요? 힘든 건 오히려 삶 자체죠. 퍼스트레이디는 어딜 가나 환영받잖아요. 하루 종일 일하고 가족을 돌보며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는 평범한 모든 삶이 더 힘들다고 봅니다.”

대통령 시절부터 사르코지의 아침 알람은 자신의 노래라고 털어놨다. “‘Stand by your man∼’ 하고 그의 귀에 노래를 불어넣죠. ‘여보, 내 노래 어때? 괜찮아?’ 남편은 잠이 덜 깨선 마지못해 ‘좋아, 좋아. 훌륭하다고’라고 답하곤 하죠.”

남편은 퇴임 뒤 집에 음악 스튜디오를 만들어줬다. “스튜디오에 제 우상들 사진을 더덕더덕 붙여뒀어요. 10대 소녀처럼. 예술가는 영원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 “리설주 아름다워… 김정숙 만나고파”

브루니는 올해 남북 정상회담 뉴스를 유심히 봤다고 했다. 리설주 역시 화제가 됐다고 하자 맞장구를 친다.

“역시 젊음이 좋더군요. 영부인 하면 중장년층이 많은데 마담 리(리설주)는 젊은 분이어서 더 눈에 띄었어요. 패션과 모든 것이 인상 깊었죠. 물론 현 프랑스 영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의 우아함에도 늘 경탄해요. 미셸 오바마, 재클린 케네디도 내외면의 아름다움을 겸비한 분들이죠. 김정숙 여사와 펑리위안 여사도 기회가 되면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브루니는 한국 음식에 반했다고도 했다. “평소에 부르고뉴와 보르도 와인을 좋아해요. 포도주는 프랑스가 좋다 해도 고기는 한우더군요.”

모델, 음악가, 영부인, 엄마…. 여러 버전의 브루니 중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지 물었다. 시선을 떨어뜨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탁자에 놓인 나무 장식을 말없이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결코 선택할 수 없어요. 모든 버전의 저를 사랑합니다. 나무에 손을 대는 것은 제 고국 이탈리아식으로 액운을 쫓는 의식이죠. 그냥 이대로, 정말 이대로 계속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게 다예요.”

브루니는 이탈리아 태생이다. 스무 살에 게스 청바지 모델로 일을 시작했다. 샤넬, 베르사체, 크리스티앙 디오르…. 유명 브랜드의 런웨이를 두루 누볐다. 클라우디아 시퍼, 나오미 캠벨 등과 함께 1세대 슈퍼모델로 활약했다.

“지난해 패션쇼에서 시퍼, 캠벨, 신디 크로퍼드와 함께 오랜만에 런웨이를 걸었어요. 젊은 모델들 눈빛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꼈습니다.”

모델 일을 그만둘 무렵, 그의 손엔 기타가 들려 있었다. 2003년 데뷔 앨범 ‘Quelqu‘un m’a dit(누군가 내게 말하길)’는 그를 음악 차트 정상권에 올려놨다. 음반은 프랑스 앨범 차트에서 무려 34주간 톱10에 머물며 약 200만 장이 팔렸다. 창호지 틈으로 스미는 봄바람 같은 미성, 콧소리 섞인 프랑스어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사라지는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브루니 음악의 매력을 배가한다.

“조르주 무스타키, 자크 브렐, 세르주 갱스부르…. 샹송의 전설들이 제 음악 영웅이에요. 프랑스는 수많은 (밥) 딜런과 (레너드) 코언을 보유한 나라죠. 시적인 모든 것을 저는 사랑합니다.”

브루니는 2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 3일 부산 벡스코오디토리움에서 내한공연을 펼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