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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금빛 파도야, 헐떡이는 숨을 달래주렴

입력 | 2018-11-02 03:00:00

<2> 중국 이화원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외국인에게 서울은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대부분은 서울의 대문인 인천공항을 체험하고 경복궁과 비원을 찾는다. 무엇을 생각할까? 어떤 ‘한국적’ 인상이 외국인에게 새겨질까? 최근 중국 베이징을 다녀오며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고 자금성(대표 궁궐건축)과 이화원(대표 궁궐조경), 서우두국제공항을 둘러봤다.

자금성의 건축 맛은 백색 기단과 금색 지붕에서 비롯된다. 자금성 건축은 남북 종축 방향으로 마당-건축-마당-건축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대문(오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기단은 높아지고 건축은 웅장해지며 정교해진다. 웅장함과 정교함은 황제의 집무실인 태화전에서 절정을 이룬다. 태화전 뒤로 켜를 이루며 중화전과 보화전이 펼쳐지는데 자금성 건축가는 세 건물(전삼전·前三殿)을 연결하는 바닥 장치로 백색 기단을 사용했다. 3단으로 돼 있는 백색 기단은 일종의 건물 받침대인데 마당과 마당 사이를 가로지르며 퍼지면서 자금성 특유의 맛을 낸다.

보화전 기단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주변 낮은 전각들의 몸통은 사라지고 그 위로 태양을 반사하는 금색 지붕들이 눈에 들어온다. 태화전 지붕이 거대한 파도였다면 보화전 뒤의 낮은 별채들의 지붕은 낮은 파도다. 자금성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당의 폭이 좁아지고 건물의 규모가 작아진다. 그래서 파도처럼 물결치는 금색 지붕의 모습이 안으로 갈수록 낮아지고 잦아진다. 자금성 북쪽 끝에 있는 경산공원에 오후 늦게 올라 자금성을 내려다보면 금색 지붕이 붉은 석양 아래서 금색 파도가 되어 일렁인다.

이화원의 묘미는 호수와 회랑과 경사가 만든다. 이화원은 긴 회랑으로 유명하다. 회랑은 호숫가를 따라 호수에 평행되게 직선으로 나가다가 호수 중앙에 위치한 만수산 앞에서 곡선으로 바뀐다. 곡선 변곡점에서 회랑을 나오면 만수산을 열어주는 문을 마주한다. 문 현판에 ‘운휘옥우(雲輝玉宇)’라고 썼다. 의역하면 ‘호수 위로 퍼지는 안개가 빛을 반사하고, 집의 금색 지붕들이 구슬처럼 빛난다’는 뜻이다. 앞으로 펼쳐질 체험을 준비시키는 문구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 건물과 마당을 몇 번 지나면 경사는 갈수록 급해진다. 이화원 풍경을 지배하는 팔각형 다층 목조탑인 불향각을 향해 지친 발걸음은 빨라진다. 가팔라진 경사가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거듭되는 계단참이 숨차게 한다. 불향각이 있는 정상에 도착해 헐떡이는 숨을 죽이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입을 다물기 힘든 이화원의 모습과 대면한다. 지붕이 경사를 따라 흘러내려가고 지붕이 끝나는 지점에서 호수가 시작한다. 금색 지붕 타일은 금색 유광을 입혀 반짝이고 호수 수면은 은가루처럼 빛을 분쇄하듯 반사한다.

서우두국제공항은 하나의 거대한 지붕 건축이다. 자금성 및 이화원과 마찬가지로 공항 지붕은 용을 ‘메타포’로 썼다. 지붕의 색은 황제의 색인 자색이다. 지붕은 높고 넓은데 기둥은 몇 개 없다. 공항 지붕은 마치 얇고 빨간 황제의 용포가 가볍게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다. 지붕은 부드러운 3차원 곡면으로 처리했다. 지붕의 높이는 입구가 있는 중앙에서 가장 높고 경계로 갈수록 낮아진다. 지붕에는 수많은 삼각형 천창이 격자 패턴으로 퍼져 있다. 지붕 구조틀 아래 백색 메탈 띠로 천장을 마감했다. 지붕 삼각형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지붕틀을 투과하며 분쇄되고 천장 백색 메탈에 반사하는 빛의 잔영은 지붕 곡면을 따라 멀어지고 곧 사라진다. 천창은 천장고가 높을 때는 듬성듬성 있고 천장고가 낮을 때는 촘촘히 있다. 따라서 공항 중앙에서 경계로 갈수록 천장고가 낮아져 공간은 조여지고 천창은 촘촘해져 자연광 투사는 잦아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체험의 빈도는 잦아지는 자금성과 이화원에서 느꼈던 느낌이 공항에서도 들었다.

경복궁과 비원, 인천공항도 자금성과 이화원, 공항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을까? 혹여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노력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을까? 하나는, 경복궁 근정전 주변으로 더 많은 작은 전각을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다. 근정전과 경회루 등 단일 건물 체험 중심의 경복궁을 연속적이면서 집합적인 체험으로 바꿀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떨어져 있는 경복궁과 창덕궁 덕수궁 등 주요 3개 궁을 잇는 띠를 고안해 보면 어떨까. 이 띠는 전통의 향내가 나는 편안한 길로 3개 궁을 연결해 주면 좋겠다.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