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잇단 성차별 논란에 긴장
방송 프로그램의 성 차별적 요소에 대한 비판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MBC 드라마 ‘숨바꼭질’에서 여주인공이 남성 목욕탕에 들어가는 장면이 논란이 됐다. MBC 제공
“성(性)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는 예전에는 개그 코드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성차별 코드가 됐습니다.”
요즘 드라마나 예능 PD, 작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을 두고 남녀 시청자들의 날선 공방이 이어지기 때문. 여성 차별, 남성 혐오 등 성대결로까지 치달았던 사회적 분위기가 방송계에도 불어닥친 모양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 사이에선 “사회현상을 제대로 설명하기도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여성의 성 상품화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것과 달리 남성들도 성 비하 발언이나 행동에 민감해졌다. 9월 MBC 드라마 ‘숨바꼭질’에서 여주인공 민채린(이유리)이 남성 목욕탕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나체로 목욕 중인 남성들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노출됐다. 시청자들은 “성범죄로 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성별이 뒤바뀌었다면 방송에 내보낼 수 있었겠느냐” 등 비판과 함께 제작진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들이 시청자 게시판에 쏟아졌다. 결국 제작진은 “여주인공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통념을 깨나가는 과정을 그리기 위한 의도로 촬영된 장면”이라며 “의도와 달리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기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방송 프로그램의 성 차별적 요소에 대한 비판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tvN 예능 ‘최신유행프로그램’에서 복학생이 개그 소재로 등장한 장면이 논란이 됐다. tvN 제공
지난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tvN 예능 ‘짠내투어’에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호감이 가는 남성과 별로였던 남성에게 각각 맥주잔을 채우라”고 한 장면에 대해 법정 제재를 의결했다. 방송소위는 “사회 전 분야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제작진의 성 평등 감수성 부재로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과 정서를 해쳤다”고 밝혔다. 일부 시청자는 방송을 보며 실시간으로 방심위에 신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프로그램의 성 차별적 요소에 대한 비판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tvN 예능 ‘짠내투어’에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술을 따르라고 한 장면이 논란이 됐다. tvN 제공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계가 그동안 성차별적 문제에 무감각했다는 방증”이라며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차별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