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그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는 ‘징용공’이란 표현이 아닌 옛 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징용이란 용어에 담긴 강제성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당시의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에는 모집, 관청의 알선, 징용이 있었는데 이번 소송에 참여한 한국인들은 ‘모집에 응한 노동자’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총동원법 시행 이후 동원된 모든 조선인 노동자는 강제동원 피해자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일본 정부가 개입된 상황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등 일본 기업으로부터 착취를 당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일본이 그런 입장에 근거해 한국 사법부의 배상 판결에 반발하는 것과 아베 총리가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정부 차원에서 설명회를 열어 비슷한 소송과 관련된 자국 기업 87곳에 배상도 화해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사실도 알려졌다. 어떻게든 양국 간의 불필요한 감정적 대립을 자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불씨를 되레 키우려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집권 이후 식민지배 침략전쟁 같은 역사적 과오를 부인하는 데 앞장서 왔다. 4년 전 위안부 동원의 일본군 책임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1993년)를 무력화하는 검증보고서를 꺼내 든 것이 대표적이다. 담화에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한일 당국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며 강제동원을 사실상 부인한 것이다. 이 같은 행보는 과거사의 잘못을 은폐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지지 세력을 결집해 자신의 숙원 사업인 평화헌법 개정 등 우경화에 가속페달을 밟으려는 속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