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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의 인생 영화]좋은 배우, 좋은 사람을 추억하다

입력 | 2018-11-03 03:00:00

<11> ‘홍반장’과 ‘광식이’




‘홍반장’역을 연기하는 故 김주혁.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

2005년 봄, 서울 강남. 김현석 감독을 비롯한 우리는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편집실에 옹기종기 모여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김주혁 배우가 매니저 없이 혼자 슬그머니 찾아왔다. 사는 집과도 가깝고 편집이 어떻게 돼 가는지도 궁금해서, 아니 그냥 들렀다고. 그가 한두 시간 앉아있는 사이 편집실 앞에 주차해 놓은 그의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왔다. 함께 있던 연출부나 편집실 직원에게 키를 건네줘도 될 텐데 그는 직접 나가 차를 빼고 다시 주차한 후 돌아왔다. 얼마 후 또 전화가 왔고 그는 또 나갔다가 왔다. 그리고 한 번 더 차 빼달라는 전화가 왔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김주혁이라는 배우가 참 소탈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왜 그랬어요?”라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 싶어도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며칠 전 고인이 된 그의 1주기를 추모하는 소박한 자리가 마련됐다. 몇몇의 지인이 그를 기억할 때, 누군가는 눈가를 붉히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대체로 담담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김주혁 배우는 그가 연기한 역할의 이름으로 불리거나 기억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홍반장’이나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이’,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구탱이 형’이 그렇다. 휴 그랜트처럼 로맨틱 코미디에 최적화된 연기 스타일과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의 더 많은 멜로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싶었지만 그는 최근 냉혹하고 강렬한 캐릭터의 악역들을 맡아 열연했다.

‘홍반장’의 주인공은 영화 제목처럼 동네 대소사에 어김없이 얼굴을 내미는 인물이다. 짜장면 배달부로, 편의점이나 분식집 알바로, 라이브 카페의 일일 가수로, 지붕 수리공으로. 낯설고 작은 동네에 치과를 개업한 여주인공 윤혜진(엄정화 분) 앞에 그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홍반장은 변변한 고정 직업조차 없는 백수인 듯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또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여자의 마음을 얻는 홍반장처럼 이 영화는 어수룩한 듯하지만 은근히 재미있고 따뜻하다.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이는 같은 대학 후배를 7년이나 짝사랑하는 인물이다. 짝사랑의 감정을 숨기려고 같은 동아리의 다른 여자 후배들을 챙기거나 가깝게 지내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게 동아리의 평화를 유지하게 되는 억울한 사람이다. ‘짐작만 가지고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여자의 심리를 간파하지 못했던 광식이는 결국 “오빤 좋은 사람이에요”란 말을 끝으로 7년간의 짝사랑을 끝내려 한다.

정확한 대사 구사와 결코 과하지 않은 표정 연기와 잘 훈련된 몸의 움직임 등 원론적 의미에서 매우 탁월한 재능의 김주혁 배우가 연기한 두 인물은 그렇게 결국 관객의 마음을 얻는다.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사고로 갑자기 떠나버린 그의 죽음은 그가 분한 영화 속 인물들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캐릭터와 결코 같지 않아 사람들을 슬프게 했다. 추모의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 좋은 배우’라고 그를 기억했다. 김주혁 배우의 1주기가 며칠 지나지 않아 오늘은 배우 이야기를 쓴다.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