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18>인구 40만, 스위스 취리히의 실험

크리스티안 토마스 IFP 전 사무총장
○ 인구 40만 취리히, 교통사고 사망자는 ‘0명’

“보행자 중심 도시를 위한 ‘마법의 레시피’는 없다. 도시마다 다른 해결책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닌 ‘디테일’이 사고를 줄인다는 점이다.”
토마스 박사는 길을 나서기 전 ‘섬세함’을 강조했다. 2015년 보행안전 국제세미나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던 그는 “서울은 매우 큰 도시인 만큼 차량이 많고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도로로 나온 자동차는 보행자에게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된다. 자동차가 속도를 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차량 이용이 줄도록 대중교통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위스 취리히 불링거 광장 바닥에 ‘20’이라는 하얀색 글씨가 적혀 있다. 최고 제한속도 시속 20km인 ‘20존’을 뜻한다. 20존에서는 보행자가 항상 통행 우선권을 갖기 때문에 무단횡단 개념이 없다.
스위스 취리히 곳곳에 있는 ‘20존’ 표지판. 어린이가 도로로 뛰어드는 모습을 표현해 운전자 주의를 요하고 있다.
보행자 통행이 잦은 지역은 신호 간격을 좁혀 운전자를 불편하게 한다. 취리히역 앞 횡단보도는 1차로 도로인데도 보행자 신호등이 있다. 이 신호등은 30초마다 초록불로 바뀐다. 신호 한 번마다 자동차가 대여섯 대밖에 지나갈 수 없다. 토마스 박사는 “자동차가 보행자를 헤집고 운전해야 하는 구조라 어떤 운전자도 역 앞을 지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왕복 2차로에도 보행섬 설치
스위스 취리히에서 가장 붐비는 벨뷰역 인근. 트램과 버스, 자동차와 보행자가 모두 이용하는 도로지만 지난해 사망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행자들이 도로를 자유롭게 가로지르고 있다.
취리히 시내를 6시간 걷는 동안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는 한 대도 발견하지 못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널 때는 멀리서부터 속도를 줄였고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보행섬에 멈춰 서 있으면 오히려 지나가라고 손짓했다.
스위스 취리히의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횡단보도 건너는 법을 배우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리마트구트 유치원 어린이들이 교통안전교육을 받은 뒤 실습을 하고 있다. 왕복 2차로인데도 보행 약자를 위해 교통섬이 설치돼 있다.
스위스 횡단보도는 눈이 왔을 때도 잘 식별 되도록 노란색을 사용하고 있다.
교통안전교육을 받고있는 4세 어린이가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스위스 교통안전 교육은 한국과 다른 점이 많다. 우선 길 건너는 법을 바로 가르치지 않고 안전하게 걷는 법부터 가르친다. 보도를 반으로 나눴을 때 차도 쪽이 아닌 길 안쪽으로 걸을 것을 강조한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동차가 멈췄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셸리바움 씨는 “어린아이들은 차가 멀리서 올 때 속도가 줄고 있는지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동그란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지 확인하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또 운전자와 반드시 눈을 맞추라고 강조한다. 운전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걸 확인한 뒤 횡단보도로 발을 떼도록 한다. 교통안전 교육은 16세까지 받는다.
취리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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