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실엔 실장 1인 둔다” 정부조직법 직제규정 위반하고 대통령令으로 정책실장 부활시켜 法治 무시하는 ‘제왕적 청와대’… 민주·개혁 자처하며 적폐 키워서야
김순덕 논설주간
대통령비서실 직제 관련 정부조직법 14조 1항은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을 둔다’, 2항은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정책실장이라는, 비서실장과 동급의 또 다른 실장에 대한 규정은 눈 씻고 봐도 없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 대통령의 국가정책 뒷받침을 위해서라며 ‘대통령비서실에 정책실을 두고, 실장 1명을 둔다’는 대통령령을 국무회의에서 처리했다. 모법(母法)인 정부조직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정입법이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현행 정부조직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은 헌법상의 대원칙이며 헌법정신인 법치행정의 원리를 훼손한다’는 논문도 최근 법학논총에 발표됐다(김성배 국민대 교수의 ‘행정조직 법정주의와 대통령 보좌조직 구성상의 한계’).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대통령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법치주의와 헌법수호의 엄중함이었다. 여권이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 추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에 나선다면 위헌성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핵심 프로젝트를 위해선 전담 실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나는 반대다. 이참에 정책실장을 없애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이번 정부가 과거 제왕적 청와대 뺨치는 ‘비서실 정권’이기 때문이다.
장하성은 8월 22일 국회 추궁에 “분명히 말한다. 경제 사령탑은 당연히 김동연 경제부총리”라고 했다. 그러고도 나흘 뒤 기자간담회에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당위성을 강변하며 “양극화의 고통을 가져온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최근 시정연설에서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복창한 걸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대통령과 호흡하는 정책실장이 경제 총사령탑인 거다.
대통령에 충성하는 참모조직이 내각의 꼭대기에 올라앉는 것이 적폐 중에서도 왕적폐다. 권력은 만담가도 강심장으로 만든다. “문 대통령이 참모진에게 금융계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한 사실이 15일 확인됐다”고 파이낸셜뉴스가 올 1월 16일자 1면에 보도했는데도 정책실장은 1월 30일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에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에 지원하라고 전화했다. 이것이 ‘정의로운 나라’의 청와대 기강인가.
그것이 바로 정책실장을 폐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세계 경제가 하향 국면에 들어서면서 국내 경기는 세계 경기보다 더 뚜렷하고 장기적인 하향 흐름이 이어진다는 2019년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대착오적 이념에 사로잡힌 청와대 실세가 ‘경제 투톱’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시장을 헷갈리게 해도 될 만큼 세계는, 우리 경제는 한가롭지 않다. 그래도 정책실장을 둬야겠다면 차라리 정책반장이나 왕수석이라고 하기 바란다. 장관급 봉급에 들어가는 혈세라도 좀 줄일 수 있게.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