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시인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숨진 지 50년이 되는 해다. 시인은 귀가하던 밤길에 집 근처에서 버스에 부딪혔다. 알베르 카뮈는 기차 일정을 바꿔 편집자의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에 차가 나무에 부딪치는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죽을 때 나이는 각각 48세와 47세. 난리 통에 죽거나 병으로 죽으면 운명이겠거니 생각하게 되지만 교통사고로 죽는 것은 어쩐지 비명에 갔다고 여겨져 더 안타깝다.
▷가장 억울한 교통사고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것일 게다. 9월 카투사에서 복무 중이던 윤창호 씨가 부산 해운대에서 만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다. 윤 씨의 친구들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고 수십만 명이 함께 분노하며 동의를 해줬다.
▷이들이 국회에 제안한 것이 이른바 ‘윤창호법’ 제정이다. 음주운전 초범 기준을 2회에서 1회로 변경하고 처벌 기준인 음주 수치를 낮추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윤창호법’을 발의했고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 등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동참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행위”라며 “선진국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살인죄로 처벌받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 이 의원이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코미디 같지만 결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본인이 직접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고 했으니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언행 불일치의 표본”이라며 비판하는 글이 올랐다. 이 의원이 음주운전을 했지만 사망사고를 일으킨 것은 아닌 이상 살인죄 처벌 운운하는 건 지나치다. 다만 국회의원의 언행 불일치가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도 흔치 않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에 자신이 구속된다고 여겨 삼가게 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다. 말은 말일 뿐이라는 듯 스스로 열흘 전 살인행위라고 질타한 음주운전을 참으로 가볍게 저지른 의원의 ‘태연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