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배우 넘어 감독-제작자 활동… “그를 빼면 한국영화사 파악 못해” 2000년 한나라당 의원 ‘정치 외도’… 금품수수 혐의로 수감생활도 배우협회장 등 영화계 일 앞장… 계명대 교수로 후진 양성 힘써
“고인은 9일 열리는 시상식에 ‘들것에 실려서라도 꼭 가겠다’고 했어요. 몇 달 전에도 영화를 같이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로 언제나 열정적이었는데….”
4일 원로 배우 신영균 씨(90)는 ‘제8회 아름다운예술인상’(신영균예술문화재단 주최)에 공로예술인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신성일 씨(81)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깊이 애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였던 고인의 삶은 그 자체가 한국 영화사와 궤적을 함께해왔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북중·고교,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맨발의 청춘’(1964년), ‘춘향전’(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을 쏟아내며 1960, 70년대 한국 영화의 독보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본명은 강신영이지만 신상옥 감독이 예명을 ‘신성일’이라고 지어줬다.
고인은 정계로도 눈을 돌렸다. 1981년,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차례 낙마한 후 2000년 국회에 입성(한나라당·대구 동구)했다. 본명을 써야 하는 선거에서는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정치에 뛰어든 결과는 혹독했다. 2005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연장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된 것. 고인은 개인사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맨발의 청춘’ ‘청춘교실’ ‘가정교사’ 등에서 호흡을 맞춘 당대 최고의 배우 엄앵란 씨와 1964년 결혼식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 1남 2녀를 뒀지만 고인의 끊이지 않는 외도로 오랜 기간 별거했다. 하지만 2015년 엄 씨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곧장 달려가 간호했고, 지난해 고인이 폐암 진단을 받자 엄 씨가 고인을 돌보며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