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파잉 시리즈 최종 18언더 1위… 내년 미국진출 가능성 한층 커져
4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활짝 웃고 있는 이정은. 크라우닝 제공
‘핫식스’ 이정은은 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 허스트 7번 코스(파72)에서 열린 올해 신설된 LPGA 퀄리파잉 시리즈 마지막 8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쳤다. 이로써 이정은은 2주 동안 144홀을 도는 ‘지옥의 레이스’인 이번 대회에서 최종 합계 18언더파 558타로 102명 출전 선수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당초 공동 45위까지 주어지는 2019시즌 LPGA투어 출전 자격을 목표로 삼았던 그는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단 한 라운드도 오버파 스코어를 남기지 않으며 당당히 수석 합격의 영예를 차지했다.
2017시즌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이정은.
이정은은 “정규 대회가 아닌데도 그린스피드가 굉장히 빨랐다. 파3 전장도 길고 전체적으로 코스가 좁고 어려워서 티샷을 포함해 모든 샷에 집중해서 경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주 동안 8라운드를 치르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비가 와 하루 쉴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투어를 평정한 이정은의 내년 시즌 활동 무대는 LPGA투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정은은 자신이 네 살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 이정호 씨(54)와 늘 뒷바라지에 애를 쓴 어머니 주은진 씨(48)를 염려하는 마음에 LPGA투어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었다.
하지만 이정은이 KLPGA투어 톱스타로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갖게 됐다. 어머니 주 씨는 “정은이가 엄마 아빠 힘들까봐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 걱정 말고 마음껏 해보라고 했다. 미국 가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도 이정은의 LPGA행을 부추기고 있다.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딴 이정은은 태극마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다. 이정은은 “올림픽에 나가려면 랭킹 포인트 획득에 유리한 LPGA투어에서 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자골프가 새롭게 채택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4명 박인비 김세영 전인지 양희영은 모두 LPGA투어에서 뛰고 있다.
올해 대방건설과 3년 동안 메인스폰서 계약을 할 때도 해외 진출에 대한 제약 조건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리는 1997년 퀄리파잉 시리즈의 전신인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한 뒤 월드 스타로 성장했다. 그의 활약을 보고 성장한 숱한 ‘세리 키즈’가 쏟아졌다.
현재 LPGA투어에는 동명이인 이정은(30)이 뛰고 있다. 국내 무에서 선배 이정은의 선수 등록명은 이정은5다. 이정은은 이정은6다. LPGA투어는 홈페이지 리더보드에도 이정은 이름 옆에 숫자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 2관왕을 차지한 이정은.
‘6’을 붙였다. 이에 대해 이정은은 “팬클럽 이름은 럭키 식스다. 핫식스라는 별명은 지난해에 워낙 성적이 좋아서 모든 기록을 휩쓸다보니 동료 언니들이 ‘핫’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줬다. 한국에 같은 이름의 음료수가 있는데, 겸사겸사 그렇게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최근 KLPGA투어가 대회수나 상금 규모 면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LPGA투어에 도전하려는 한국 선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이정은의 당당한 발걸음에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정은은 9일 경기 여주 페럼클럽에서 개막하는 KLPGA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두 토끼를 노리고 있다. 현재 선두를 지키고 있는 상금(9억5300만 원)과 평균 타수(69.725타)에서 모두 1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6일 귀국하는 그에게는 시차와 피로 누적 등 자신과의 험난한 싸움을 치러야할 것 전망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