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유엔총회에서 인권을 담당하고 있는 제3 위원회에 북한의 인권 상황을 규탄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상정됐습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환영한다는 내용도 담겼는데요. 과연 북한의 인권 상황 규탄과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개선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을까요?
-이태헌 경희대 국제학과 4학년 (아산서원 14기)
A.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우리 정부가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죠. 특히 이른바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부에서 어려움을 겪곤 했던 이슈입니다. 인권 일반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인권에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달 중에 제3 위원회(The Third Committee)에서 해당 결의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입니다. 200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상정된 이래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올라온 결의안이고, 예외 없이 통과됐던 만큼 이변이 없으면 ‘컨센서스’ 방식으로 채택 되겠습니다. (물론 북한 대표의 반대토론 및 퇴장이라는 ‘통과의례’는 있겠지만요.)
그리고 나면 12월 유엔총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됩니다.
“북한에 오랜 기간 그리고 현재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침해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 올해도 적시될 것입니다.
그에 더해 올해에는 처음으로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2018년 8월 이산가족상봉 재개를 환영하고 이와 함께 이산가족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을 환영한다”는 대목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설명)
◇북한인권은 특수하다?
하지만 보수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2008년 이후 10년) 우리 정부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계속 찬성표를 던졌고 이제는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찬성표결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권이라는 것이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북한정권이 인권탄압국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립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것은 위선적인 일이고, 인권문제를 제기하느라고 남북관계을 파국으로 몰고 가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보수진영의 경우 천부인권의 개념과 북한 민주화 운동을 종종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원흉인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논리죠. 수많은 인권침해를 자행한 전범(戰犯)에 가까운 만큼 정권교체를 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인권문제 해결이 곤란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됩니다.
그에 더해 먹고사는 문제나 긴급 구호, 보편적 의료권 등 인도주의적 사안, 아동의 인권, 장애인의 인권 같이 북한이 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분야에서의 활발한 협력을 모색해 보는 것 역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대목이라고 여겨집니다.
◇북미관계 개선의 최종 장애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열렸고 11월 중간 선거 이후 내년 초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은 상태입니다. 비핵화 대화의 진전을 전제로 결국 북-미는 종전선언→평화협정체결→관계정상화(북-미수교)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이슈가 바로 인권문제입니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코마상태로 돌아온 뒤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미국 국적의 선교사들이 장기간 북한에 억류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은 인권탄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북한과 미국간에 인권문제에서 타협점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1969년 중국과 수교할 당시 중국에는 분명히 심각한 인권탄압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고, 현재도 상당부분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중동지역의 최대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사실상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과거 대한민국 역시 많은 인권문제가 있었습니다.
미국 역시 인권문제에서 완벽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인권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타협점은 존재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대전제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과거와는 다른 수준의 인권보호를 약속하는 것이겠죠. 정치범 수용소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잔혹한 고문의 중단,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박해, 식량권을 보장하지 못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탈북행렬을 중단할 선정(善政)의 시행은 김정은 정권이 약속해야 할 인권개선대책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하태원 기자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