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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청년 발언대]대한민국 ‘북핵 세대’의 초상

입력 | 2018-11-05 10:00:00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유럽 순방에서 교황을 만나 김정은의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아마도 지금의 협상 국면에서 간접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행위자 수를 늘려나가 북한이 판으로부터 이탈하는 비용을 높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국제정치학계 제도주의자들(institutionalist)의 표현에 의하면 ‘미래의 그림자(shadow of the future)’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공동의 이해관계란 다름 아닌 평화다.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통일과 비핵화 중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은 “나의 우선순위는 평화”라고 밝혔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정략적인 계산 없이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과정임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대학생인 나에게 ‘평화’는 무척이나 낯설고 요원하게 느껴진다. 그렇기도 한 것이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는 ‘북핵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나는 1차 북핵 위기(1992~93년) 이듬해에 태어났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에는 2차 북핵위기(2002~2003년)를 맞이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2017년까지 이어진 여섯 차례의 핵실험은 말하자면 나의 학창시절과 궤를 같이 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한 국민으로서 진전과 교착을 거듭하고 있는 비핵화 국면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나 ‘항구적인 평화(permanent peace)’라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종전 선언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인으로서 정전 체제는 마치 숙명처럼 타고난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구조적인 조건이 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경우 두 가지 근본적인 의구심이 든다. 첫째, 북한은 국가인가? 대한민국 헌법 3조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단체이며 북한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반란단체 내지는 교전단체라는 것이다. 초·중·고교의 제도권 교육과 군대에서의 정훈교육 등은 이러한 관점을 여실히 따른다. 현재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판문점 선언의 비준 여부에 대한 논쟁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입장의 주된 논거는 북한은 우리에게 국가가 아니므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지도자 간 합의 사항을 국회가 비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북한의 국가성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렀다. 한국은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관습국제법을 성문화한 1933년 몬테비데오 협약에 의하면 어떤 정치 단위체는 영토, 인구, 주권을 갖추는 경우 타국의 승인과 무관히 유효하게 국가로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북한은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에 국가 자격으로 가입했으며 미국 또한 북한을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심지어 6월에 우리나라는 기존 회원국이던 북한의 찬성표로 국제철도기구에 가입한 바도 있다.

이와 같은 현실과 규범 사이 ‘인지불일치(cognitive dissonance)’ 문제에 대해 기성세대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1991년 남북한 UN동시가입을 통해 한국이 북한을 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보지만 정부는 이러한 해석을 거부한다. ‘남북한특수관계론’은 이 모순된 인식에 대해 한국 사회가 이룬 합의의 정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단계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이므로 북한이 국가인지 아닌지 여부는 차치한다는 식의 논의는 특히 제도권 정치가 현실을 교정하길 거부한 채 이를 이념적 차원에서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우리는 북한 주민들과 같은 민족인가? 남북이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 원칙에 합의한 이래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빠지지 않는 서사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세대 간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전쟁을 직접 경험했거나 그 여파 속에서 성장한 기성세대에게 통일이란 분단 이후 비정상성으로부터 분단 이전의 정상성으로의 회귀, 즉 원상회복을 의미한다. 그러나 분단된 현실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우리, 여기서 명명한 바 ‘북핵세대’에게 통일은 비단 원상회복이 아닌 A에서 B로의 국면 전환을 의미하므로 합리적인 설득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9월 19일 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은 강한 수준의 민족주의 서사를 사용했다. 예컨대,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와 같은 메시지는 이미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의 관점을 반영한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최근 10년 간 우리 세대는 북한 주민들과 물리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일절 없었음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연설은 큰 울림이 없다.

몇 년 전 타계한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 Anderson)에 따르면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이며 근대에 이르러서야 발명된 개념이다. 그 연장선에서 한민족이란 마찬가지로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거칠게 표현하면 허구적이기도 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은 필연적으로 통일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킨다. 그 경우 남북의 구심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 핵위기의 시작 즈음 태어난 북핵세대에게는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냉철한 상황인식에 기반해 통일의 비용과 편익에 대한 실체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젊은 세대의 입장을 나홀로 대변하거나 일반화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힌다. 다만,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의구심은 핵이라는 변수를 선험적으로 안고 한반도에 태어난 이른바 ‘북핵세대’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주제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기성세대의 결정을 주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짊어지고 나갈 책무를 부여받은 세대이다. 대의민주제에서 비핵화와 같은 중대한 안보 사안에 대해 상위정치(high politics)를 중심으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나 그 과정에서 청년들에 대한 관심은 사실상 ‘0’에 수렴한다. 젊은 세대를 통일안보 정책의 수요자이자 객체로 인식하는 제도권 정치나 ‘이것은 너무나도 긴요한 안보 문제이니 어른들에게 맡겨라’라는 엄숙주의를 심정적으로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나 평화체제의 수립은 우리 세대의 인식 기반을 흔드는 문제이기도 한만큼 앞세대가 뒷세대의 고민에 귀 기울이고,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충분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취지 아래 이에 호응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우아한’ 프로젝트의 취지와 맥이 닿아있으며 그런 점에서 세대 간 소통을 지향하는 플랫폼의 출범을 기쁘게 생각한다.

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 (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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