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비공개 오찬까지 158분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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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5당 원내대표들에게 “민생입법과 예산에 초당적으로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맞는 말이긴 한데 외교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그대로 가자.”(문재인 대통령)
“그럼 ‘한미 간의 튼튼한 공조’ 문구는 ‘동맹과 공조’로 바꿔야 한다.”(김 원내대표)
○ ‘평화체제 협력’ 주고 ‘원전기술 발전’ 받고
청와대와 여야는 회동 나흘 전인 1일부터 합의문 물밑 조율을 벌였다. 주말 사이 국가균형발전, 지역주도형 일자리 창출 노력 등 이견이 없는 항목부터 초안이 작성됐다. 견해차가 컸던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 문제와 사법농단 사건을 담당할 특별재판부 설치는 아예 안건에서 빠졌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마지막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내용은 공란으로 남겨 놓고 회담에서 직접 채워 나가는 식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서 논쟁이 치열했던 안건은 대북 정책과 원전 정책,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이었다. 문 대통령은 직접 합의문 초안에서 문구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야당을 압박했다. 야당 원내대표들도 기세에 눌리지 않고 원하는 바를 하나씩 거론하며 자구 수정을 거듭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원전기술력과 국제경쟁력이 위기에 처해 있다. 에너지정책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며 초안에 없던 ‘에너지정책을 점검해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항목을 넣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머리에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유지하면서’라는 전제를 붙여 항목을 신설하자”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또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표방했지만 이는 장기적인 것이다. 정책 기조가 60년은 이어져야 탈원전이 이뤄진다”며 야당을 달랬다. 결국 참석자들은 문 대통령이 제안한 표현에서 ‘유지하면서’를 ‘기초로’로 바꾸는 선에서 타협했다.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의혹을 국정조사하자는 한국당의 요구에 대해 문 대통령은 즉답을 피하면서 “철저히 전수 조사해 내년 1월에 결과를 발표하고 단호히 조치하겠다”고 방어했다. 합의문의 ‘방송법 개정안 논의’는 바른미래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어정쩡한 합의 많아
어렵사리 합의문이 채택됐지만 정치권에서는 “선언적, 추상적 문구가 많아 입법 단계에서 ‘각론’에 들어가면 하나하나가 다시 쟁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정의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탄력근로제 확대라는 방향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 절차나 시한은 정하지 못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합의 결과에 대해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연내 마무리하는 것을 사실상 청와대가 수용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 방식으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며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최우열 dnsp@donga.com·장원재·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