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정치부장
이전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골프를 쳐 봤다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반응이다. 빨랫줄처럼 하늘을 가르는 드라이버 샷이 일품이라고 한다. 청와대 입성 전 이야기라 지금 샷은 어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1, 2년 안 쳤다고 무너질, 그런 수준의 실력은 아니라고 한다.
정치권에서 임 실장의 골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운동 능력이나 테크닉 못지않게 그의 젊음(52세)을 이야기한다. 재선 의원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 어쩌면 그리 늘씬하고 힘도 좋냐는 것이다.
임 실장은 최근 한국 정치에서 상당히 특이한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서실장은 대부분 정치(또는 사회) 경력의 대미를 장식하려 그 자리에 갔다.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들은 모두 박 전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았다. 비서실장 이후 또 다른 정치적 기회란 없었다.
하지만 임 실장은 청와대를 떠나도 50대 초중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 파문으로 재판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배우 김부선 씨와 얽힌 논란으로 진창에 빠져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얼마 전 드루킹 파문의 첫 번째 재판에 출석했다. 이런 게 얽혀 임 실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를 둘러싸고 차기 대권 논란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젊다는 게 임 실장에게 마냥 유리한 걸까. 운동과 달리 정치는 그렇지 않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젊지만 어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젊음의 장점을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임 실장의 경우에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임 실장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해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때 34세로 여야를 통틀어 최연소 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형,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비서실장인데도 아직도 국회 안팎엔 “우리 종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를 어리게만, 심지어 전대협 의장 시절의 임종석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임 실장이 오늘 딱 1년 만에 다시 국회 국감에 출석한다. 1년 전보다 임 실장은 더 야당의 타깃이 될 것이다. 청와대 2인자로서 일은 많아졌다. 남북공동선언이행추진위원장으로서 비핵화 협상과 남북 관계에 관여해온 만큼 또다시 주사파, 전대협 관련 질의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DMZ 선글라스’ 갖고만 몇 시간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임 실장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1년 전처럼 한국당 공격에 쌍심지를 켜면 지지층은 속 시원하겠지만 보수는 다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할 것이다. 2년 차 실세 비서실장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낼지는 임 실장 몫이다. 그러나 청와대 2인자가 정치적 논란과 파장의 주인공이라면 여야 관계는 물론이고 본인에게도 그리 생산적일 건 없다. 머지않은 청와대 이후 삶에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