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여인은 1814년에 지어진 고전소설 ‘삼한습유’ 속 향랑이다. 향랑은 산 사람이 아닌,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이다. 혼령이 되어 나타날 정도로 잊지 못하는 사랑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향랑은 1698년 경상도 선산(善山)에 실존했던 인물인 박향랑(朴香娘)을 모델로 한다. 박향랑은 성격이 포악한 부자에게 시집가서 남편에게 구박을 당하다가 소박맞는다. 친정에서 재혼을 강요받자 물에 빠져 자결하고 만다. 조선시대에 실존했던 전형적인 열녀인 것이다. 그런데 소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한다.
향랑은 현생에서 ‘열녀’로 칭송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열녀라는 타이틀은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억압적인 사회 구조가 그에게 열녀 되기를 강요했을 뿐이다. 어떻게든 환생해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이는 천상 세계에 있는 다른 열녀와 효녀들이 같이 환생하자는 향랑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들은 번거로운 삶 대신 이미 열녀와 효녀로 세상에 알려진 평판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했다. 향랑은 달랐다. 자신이 원하던 남자와 꼭 한번 결혼하고 싶었으며 ‘열녀’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향랑은 결혼 후 신라에 위기가 찾아오자, 남편에게 당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라고 지시한다. 결국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합병하는데, 이때 향랑은 집안에서 작전을 지시한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거듭난다. 결국 향랑은 왕실 여인들의 스승이 되고, 사람들에게 ‘모사(母師)’라 불리게 된다. 나라에 도움을 주는 어머니이자 스승, 이것이야말로 향랑이 진정으로 원했던 평판이 아니었을까. 향랑에게 ‘열녀’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가 규정해준 것이었고 죽은 후에 받은 상처뿐인 명예에 불과했다. 따라서 향랑은 새 삶을 살기를 원했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전혀 다른 여자로 태어났다. 또 현생에서의 열녀 타이틀에 연연하기보다 전혀 다른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 여성이었다.
이후남 전주대 강사·국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