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오븐에서 빵을 꺼낸 뒤 식기 전에 얼른 레돔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 말은 빵 구울 때마다 하는 소리인 것 같은데…. 그런 표정으로 레돔은 빵을 들고 살짝 외모를 살핀 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다음엔 귀에 대고 빵을 누르며 소리를 들어본 뒤 천천히 뜯어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하는 것이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빵을 씹는 것 같다.
“음….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눌렀을 때 노래를 해야 해.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운데 껍질을 조금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군. 오븐에서 나온 빵 껍질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싹해서 눌리면 음악소리가 나야 해. 이건 좀 물렁거리는 편이다.”
“빵이 무슨 아코디언이냐. 누르면 음악소리가 나게. 나 이제 빵 안 굽는다. 쳇.”
한국의 주부는 매일 밥을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 주부는 매일 빵을 구울까? 답은 아니다. 프랑스 가정에서 빵을 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디저트 파이나 쿠키는 많이 굽지만 빵을 굽지는 않는다. 나 또한 프랑스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빵을 구워본 적이 없다. 집 앞에 빵집이 수두룩한 데다 그 빵집 빵이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이다. 비용 또한 집에서 반죽을 하고 오븐을 켜서 한 덩이 굽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다.
나의 빵 굽기는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딱딱한 돌덩이가 되어 나왔다. 오븐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갈 때보다 더 쪼그라들고 단단해져 버렸다. 나의 빵 마루타 레돔은 돌빵을 씹으며 추억의 빵 맛이라는 눈물겨운 평가를 해주었다. 그에게 딱딱한 빵은 한국인에게 찬밥처럼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오래되어 굳어버린 빵을 사과껍질 까듯이 벗겨주면 그것을 받아 먹었다고 한다. 시부모님도 딱딱한 빵을 참 좋아한다. 밥으로 치면 찬밥을 좋아하는 머슴 식성이다.
시부모님이 어렸던 시절엔 동네에 빵집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빵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만 빵을 구웠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1m가 넘는 커다란 빵을 사서 일주일 내내 먹었다. 마지막엔 빵이 돌덩이처럼 굳어 버린다. 별미는 그 딱딱한 돌덩이를 뜨끈한 수프에 담가서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건져 먹는 것이라고 한다. 시아버지는 지금도 갓 구운 빵보다 구운 지 며칠 지난 빵을 더 좋아한다. 우리가 쌀을 버리면 벌 받는다고 하는 것처럼 그들도 절대 빵은 버리지 않는다.
아들이 엄마의 밥, 아니 엄마의 빵을 거부했다. 귀하게 키웠더니 할아버지와 달리 왕자님 식성이다. 아들은 겉은 바싹하게 노래하고 속은 촉촉한 파리지엔의 바게트를 제일 좋아한다. 엄마의 빵은 거칠어도 건강에 좋다는 등의 말을 하면 콧방귀만 요란하게 뀔 뿐이다. 그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을 위해 최고의 빵을 만드는 거야. 여자 김탁구는 노래하는 바게트를 만들겠다는 집념을 불태우며 틈만 나면 밀가루 반죽을 해댔다.
결과물은 설익은 빵, 타버린 빵, 말라비틀어진 빵, 부풀다 만 빵…. 이상한 빵들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깊은 시름에 잠긴 나에게 레돔이 발효 중인 사과와인 찌꺼기 맛을 보라고 내밀었다. 레돔의 와인 마루타인 나는 그것을 마시는 대신 버리듯 빵 반죽에 넣어 버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반죽이 뽕뽕 딸꾹질 소리를 내며 춤을 추듯이 부풀어 올랐다. 오븐에 넣는 순간에도 빵틀을 넘어서며 흘러내렸다. 완전히 취해 버린 반죽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나의 빵, 술 취한 빵을 들고 레돔에게 내밀며 한국의 제빵왕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탁구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