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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24장 찍으면 끝… 사진 앱 ‘구닥’ 모르면 구닥다리

입력 | 2018-11-07 03:00:00


필름카메라 시절처럼 24장을 찍고 나면 한 시간 동안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24장을 다 찍고 나서도 꼬박 72시간을 기다려야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1.09달러(1200원)를 내야 내려받을 수 있는 유료 애플리케이션(앱)이다.

그런데 이 불편하고 구닥다리 같은 카메라 앱이 화제다. 140만여 명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앱을 내려받았고, 국내를 넘어 해외 10여 개국에서도 불티나게 팔렸다. 단순히 다운로드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10, 20대 사이에서 트렌디함을 가르는 대명사가 됐다. 이 앱을 알면 ‘요새 사람’, 모르면 ‘옛날 사람’이란다. 바로 ‘구닥카메라’(구닥) 얘기다. 도대체 이 앱이 스노우와 카카오톡 치즈 등 정보기술(IT) 대기업이 개발한 앱들이 즐비한 카메라 앱 시장에서 뜨거운 바람을 일으킨 비결은 무엇일까. 구닥의 차별화 전략을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집중 분석했다.

○ 사진 그 자체에 집중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

구닥을 세상에 내놓은 건 강상훈 대표가 주축이 된 모임 ‘스크루바’다. 강 대표는 강남에서 유학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짬짬이 전시회를 여는 작가이자, 구닥을 개발해낸 대표로 1인 3역을 하고 있다. 사실 구닥 제작에 동참한 나머지 3명의 멤버도 모두 본업이 따로 있는 직장인들. 만날 시간은 주말뿐이었다. 매주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식사를 하면서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죽자 살자 해도 성공이 힘든 판에 본업이 따로 있었다니 의아하지만 강 대표는 이 때문에 구닥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장 돈을 벌기 위해서나, 시간에 쫓겨서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기에 이윤 창출 가능성 같은 건 제쳐두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던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진 찍는 게 너무 쉬워졌어. 그냥 찍었다가 지우면 되니 ‘한 장 한 장’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 구닥은 멤버들끼리 카페에서 이런 내용으로 수다를 떨다가 탄생했다. 소중한 사람과 찍은 사진들이 메신저 채팅 방 너머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걸까. 스크루바 멤버들은 너무 쉬워진 게 문제라고 봤다. 이에 따라 과거의 일회용 카메라를 앱으로 구현해, 불편하지만 새로운 사진 찍기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24장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 수에 제한을 두고 결과물을 확인하기까지 72시간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 대신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앱에 채워 넣었다. 코닥의 일회용 카메라를 오마주(hommage)해 소비자들이 앱을 처음 마주하는 화면부터 일회용 카메라와 유사한 이미지로 만들었다. 구닥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 필름카메라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도록 했다. 셔터를 누를 때의 ‘찰칵’ 소리뿐만 아니라 일회용 카메라 특유의 필름 감기는 소리까지 재현했다.

○ 1020세대가 놀이처럼 ‘구닥’ 즐기며 입소문 내

주변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화려한 필터를 자랑하는 카메라 앱이 수두룩했다. 그들과 경쟁해서 사용자를 확보하기에는 기술력도, 특별한 매력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강상훈 대표는 왠지 자신감이 있었다. 다른 카메라 앱들처럼 뛰어난 필터, 우월한 보정기능은 없었지만 구닥이 선보이는 낯설고 새로운 사진 찍기의 경험이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구닥은 지난해 7월 등장하자마자 선풍적인 반응을 모았고 현재까지도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0월 18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구닥 해시태그가 걸린 게시물은 16만7000여 건에 이른다.

특히 과거 일회용 카메라를 즐겨 썼던 40대가 아니라 1020세대가 구닥에 더 열광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름카메라는 새로운 트렌드인 동시에 경험해보지 못한 콘텐츠다. 그래서 오히려 필름카메라에 향수를 가진 세대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구닥 사진을 공유하고, 그 사진으로 일기를 작성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요소가 풍성하다는 점도 구닥을 더 재밌는 놀잇감으로 만들어줬다. 부업 삼아 만든 앱이라는 창업 스토리부터 손톱만 한 뷰파인더, 종잡을 수 없는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구닥에는 신기하고 이상한 얘깃거리가 가득했다.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이렇게 신기한 앱이 있는데 써봤어?”라며 대화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소재였던 셈이다.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구닥을 자기표현의 도구로도 애용하고 있다. 구닥 특유의 빛바랜, 날짜 박힌 예스러운 사진이 ‘아날로그 감성’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오감을 자극하는 디자인도 사용자들이 구닥에 애착을 느끼는 데 한몫했다. 구닥에 정서적 애착을 가진 사용자들은 마치 마케터처럼 스스로 입소문을 냈고 구닥을 모방한 앱이 등장했을 때 적극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등 구닥 지키기에 나서기도 했다.

사실 실체가 없는 스마트폰 앱이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닥은 브랜드 전략을 고민하는 많은 앱 개발자와 기업들에 시사점을 준다. 김병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닥은 뷰파인더, 필름 감기는 소리 등을 통해 일회용 카메라를 감각적으로 실체화했다”며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무형의 앱인 구닥을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처럼 느끼며,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도 여긴다”고 강조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