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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1부장
A 사장이 사실상 원화가치 절하에 베팅을 한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노조는 회사가 적자인데도 최저임금 인상을 앞세워 대폭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상당 수준의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더 올려 달라며 부결했다. 분기마다 회사 실적을 설명하지만 “그건 네 일이고”라는 식이다. 회사가 망해도 정부가 챙겨줄 테니 우리는 괜찮다는 배짱이다.
A 사장은 주변 기업인들이 줄줄이 공장을 내놓는 것도 당연하다고 했다. “우리 기업들 기술력이 일본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치고 올라오는 중국 동남아 기업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와중에 인건비는 급격히 오르고, 노조는 강경 투쟁하고, 각종 규제는 심해지고 있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거기에다 가업 상속세가 65%다. 기업을 물려받았다 해도 이윤이 나면 재투자는커녕 상속세 내기 위해 빌린 돈 갚기 급하다. 이러니 다들 어떻게든 해외로 옮기거나 기업을 팔려고 한다.”
엊그제 규제 개혁과 관련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전국 상의 회장단 회의에서 “규제개혁 리스트를 39번 냈지만 별 진전이 없다”며 이례적으로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기자들과 따로 만나서는 “위기를 국민적 저력으로 돌파, 이런 워딩 앞으로는 언론에서도 안 쓰면 좋겠다. 정치인들이 국민적 저력에 경제 문제 해결을 맡기고 제 일을 안 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배경이 궁금해 전화하자 박 회장은 “국가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돼 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양적 성장 시대의 기적은 반복되지 않는데 옛날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규제도 안 바뀌고, 서비스업은 정치적 이유로 다 막혀 있고, 신산업 담으려면 기본적으로 자유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막혀 있고, 제조업 경쟁력은 중국에 넘어갔다. 단기적으로는 재정을 통해 경제지표가 내년에 좋아질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 추세가 하락세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는 “성장을 위해 돈 들이는 게 아니라 규제 풀고 환경 바꾸자, 분배는 민간 재원 쓰지 말고 정부가 직접적으로 세수 쓰면 된다는 것인데 그게 안 된다”며 답답해했다.
산업계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원로들의 걱정과 충언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정부의 현실 인식은 “세계가 우리의 경제 성장에 찬탄을 보낸다”(문재인 대통령)거나 “근거 없는 위기론”(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다. 이 괴리를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배극인 산업1부장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