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의한 상처의 치유. 폴란드는 한국에 이것을 보여준 나라다.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에 의해 세 조각으로 나뉘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의 침공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폴란드, 그 상처의 나라가 그들에 못지않은 상처의 나라인 한국의 아이들을 보듬었다. 추상미 감독의 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그 기억을 향해 달려간다.
1951년, 북한에 의해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전쟁고아들. 한반도가 전쟁 중이라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에 잠시 위탁된 아이들이었다.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 결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살피며 키운 것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들이었다. 그들은 8년이 지나 아이들과 헤어질 때 부모처럼, 아니 부모로서 울었다.
영화는 그들의 사랑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고, 60여 년이 흘러 노인이 된 폴란드인 ‘부모’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었을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묻는다. 피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아이들을 환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영화가 내린 결론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나와 다른 그 이질감보다 더 강한’ 사랑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는 사랑이다. 타자의 철학자라 불리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빌려 말하면, “국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개인의 눈에만 보이는 타자의 눈물” 때문에 가능해지는 사랑과 환대.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폴란드인들의 사랑 이야기는 탈북 소녀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밀도와 깊이까지 더해진다. 탈북 소녀가 갖고 있는 상처의 일부만 살짝 보여주고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트라우마는 침묵과 부재로 남겨두면서, 영화는 우리에게 재현의 윤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다다른 결론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사랑은 진짜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 사랑에 대한 눈부신 헌사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