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마흔이 다 돼가지만 수능을 보던 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수능 전날 빨리 잠들어야 하는데 자정이 넘도록 잠이 안 와 초조했던 마음, 푸른 새벽 눈을 떠 창문을 열자 훅 하고 방에 들어오던 11월의 공기…. 아침 뉴스에서는 분명 예년보다 포근하다고 했는데 왜 그리도 춥던지. 수험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자꾸만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고사장에 앉았을 땐 천장이 통째로 내리누르듯 시험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에 지난 12년의 노력이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현기증이 났다.
축제는 하루 만에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다. 기자가 본 그 수능은 25년 수능 역사에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신화인 ‘역대급 물수능’인 2001학년도 수능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 뉴스를 보자 ‘만점자가 수십 명에 달하고 평균 점수는 20점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충격적인 분석들이 쏟아졌다. 실제 그해 만점자는 66명에 달했고 그중 한 명은 만점을 받고도 서울대에 떨어졌다. 그해 입시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배불리 욕을 먹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다음 해 수능은 어렵게 내겠다’고 공언했다가 이듬해엔 너무 어렵게 내 또 욕을 먹었다. 2002학년도 수능 점수가 전년보다 50점 남짓 폭락한 것이다. 수험생들은 쉬는 시간에 울음을 터뜨렸고 중도에 시험을 포기하고 집에 가는 일도 속출했다. 평가원은 항의 전화로 마비됐다. 한 고교 교사는 “올해 수험생들은 1/2+1/3은 5/6인데 이를 태연히 1/5이라고 하는 ‘이해찬 세대’인데 시험을 이렇게 어렵게 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책망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한국 교육은 늘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블랙코미디였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아무 결론 없이 끝난 최근의 대입제도 개편 논의도 마찬가지다. 별로인 수능과 더 별로인 학생부전형을 두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부조리가 10대 여고생이 아줌마가 되도록 이어지고 있다. 공교육이 형편없고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사회라 두 가지를 넘어서는 대안적 평가는 논의조차 어렵다. 아이들이 힘든 건 전적으로 기성세대 탓이다.
이런 답답함 속에서도 수능을 앞둔 이날까지 버틴 학생들이 장하다. 부디 수능 날 모두 최고의 성과를 내 후회 없기를. 어른이 되고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 수능의 기억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덜 긴장될 것이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