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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트러스트’… 재개발에 지워진 골목길 추억

입력 | 2018-11-07 03:00:00

[동네 책방의 진열대]<3> 서울 금호동 ‘프루스트의 서재’




서울 성동구 금호동 동네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내부 모습. 프루스트의 서재 제공


금호동(서울 성동구)이 달동네에서 아파트촌이 되어 버린 지금도 눈을 감으면 골목 어귀의 정경과 이어진 길들이 떠오른다. 비탈길을 오르면 누구의 집은 감나무 열매가 무르익고, 또 어떤 집은 해마다 붉은 장미가 담벼락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졌다. 대문이 활짝 열린 집 안 마당은 빨랫감이 척척 걸려 나부끼고, 빼꼼 열린 철제 대문 앞에서 그 집 멍멍개는 소심하게 짖기도 했다. 사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처럼 집 대문의 모양도 색깔도 조금씩 달랐다.

‘지금은 없는 동네: 옥수동 트러스트’(장상미 지음·어쩌면)는 금호동과 이웃한 옥수동 13구역이 재개발로 흔적이 없어지기 전 모습을 사진과 글로 담은 책이다. 책은 아주 사적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저자가 서너 평 반지하 단칸방에서 친구와 살게 되면서 잠시 머무를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이 동네를 사진으로 남겨두기로 마음먹은 건 단순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철거를 앞두고 시들어가는 동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사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불안하고 씁쓸한 마음이었을 테니까.

빈 가게가 늘어나고, 사람의 온기가 떠난 집과 물건이 제 모습을 잃어갈수록 정든 곳을 옮겨야 하는 시간도 가까워진다. 나 역시 십여 년을 한 동네에 살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봤으니 저자의 느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 반가운 책이었다.

책에 담긴 옥수동의 모습은 금호동의 옛 모습과 꼭 닮아서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희미해져 단편적으로 끊어진 기억들이 그래서 더 아쉽다. 사람이 사는 동네가 이렇게 맹목적으로 변하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와 기억을 나누려고 했을 것이다.

시간의 변화를 조금은 비껴간 길 끝에서 서점을 하면서 작은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들여 놓고 있다. 어쩌면 하찮고, 소심하고, 엉뚱하고, 이상한 이야기들. 이것들이 모인 책장은 작은 동네를 이룬 것만 같다. 동네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다르지만 조화롭게 느껴진다. 모든 이야기는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으면 이야기는 사라진다.

‘지금은 없는 동네’의 저자는 사회적 폭력의 단면을 기록하고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모색한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란 책으로 다행히 조금 더 큰 가지를 뻗었다. 떠밀려온 것은 힘이 없고 다른 것에 기대어 다시 떠밀려 갈 뿐이지만 우리가 삶을 계속 이루는 것은 떠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저마다의 뿌리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 ‘프루스트의 서재’는

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자 한다. 독립출판물, 단행본, 중고 도서를 판매한다.

박성민 ‘프루스트의 서재’(서울 성동구 무수막길·금호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