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인권 최후의 보루 사법부… 불신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법원행정처가 주도해온 현행 제도… 세계은행 평가에서 효율성 인정 사법개혁 중요하되 서두를 일 아냐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사개특위의 주요 현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원행정처 개혁 등 세 가지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공수처 설치는 야당의 반대가 강하다. 수사권 조정은 정부 내부, 특히 법무부와 검찰 경찰 간에도 입장이 다르다. 6월 법무부가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지만 검찰총장은 정부안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검경 개혁 문제는 과거 국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가 진행되었고 정부안도 형식적으로는 확정된 상태라 향후 과정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법원 개혁, 특히 행정처 존폐 문제는 사실상 처음 논의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법원은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소위 사법농단 의혹으로 다수의 법관이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았다.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불신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원흉으로 지목된 것이 법원행정처다. 이것만 없애면 소위 관료 행정 사법에서 벗어나 사법부 독립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법원은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특별재판부 설치법이 위헌 및 사법권 독립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 사건을 전담할 특별재판부와 특별영장판사를 두는 내용이다. ‘특별영장전담법관, 특별재판부는 헌법상 근거가 없고 특정 사건 배당에 국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개입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의 침해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사법부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사법권 독립 문제에 직결된 법안에 견해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우리 법원, 즉 법원행정처가 주도해 온 현행 사법제도는 그 나름대로 우수하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달 세계은행에서 국가별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평가한 결과 대한민국은 190개국 가운데 5위를 기록했다.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보는 ‘법적 분쟁 해결’ 분야는 2위였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전 세계 190개 국가의 사법 분야 평가 중 민사사건 해결 능력을 다루는 ‘법적 분쟁 해결’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법적 분쟁 해결 부문은 190개 국가를 대상으로 주요 로펌의 변호사 등으로부터 분쟁 해결에 걸리는 기간과 비용, 사법 서비스의 질에 대한 의견을 수집해 평가한다. 우리 법원은 판결문 공개, 법원 자동화, 법원의 구조와 절차, 소송 기간과 소송 비용 등의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민사소송 기간은 소장 제출에서 판결 집행까지 290일로 주요 평가 대상 국가 중 가장 짧았다. 독일 499일, 중국 496일, 영국 437일, 미국 420일, 일본 360일과 비교하면 매우 신속한 시스템이다. 소송 비용률도 12.7%로 가장 낮았다. 100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사건에 드는 평균 소송 비용이 12만7000원이라는 의미다. 영국은 45.7%, 미국 30.5%, 일본 23.4%, 프랑스 17.4%였다.
사개특위에서 이런 점도 신중하게 살펴보면 좋겠다. 대법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현행 제도의 우수성과 효율성은 살리면서, 나쁜 점만 골라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법 개혁은 중요한 문제다. 시민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법의 본질과 특성을 감안할 때 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