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엔 ‘1도 2부 3빽’ 또는 ‘1도(逃) 2부(否) 3배(背)’라는 말이 있다. 수사기관이 부르면 우선 달아나고, 잡히면 부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빽’을 쓰라는, 권위주의 시대부터 유행한 말이다. 그래도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일반 형사범처럼 ‘1도’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도주는 의외였다. 검찰에서 “그렇게 많이 가진 사람이 잡범들이나 하는 수법을 택할 줄 몰랐다”며 허탈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피 생활도 70여 일 만에 막을 내렸지만.
▷최규호 전 전북도교육감(71)도 특이한 경우다. 골프장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3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던 그는 검찰에 출석하기로 한 2010년 9월 12일 종적을 감췄다. 전날 변호인을 통해 “내일 아침 자진 출두하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친동생이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최규성 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인 데다 최 전 교육감도 각계각층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서다. 해외도피설에 사망설까지 돌았다.
▷전국의 기소중지자(속칭 수배자)는 모두 13만7000여 명. 고소 고발을 당했거나 범죄 혐의가 있지만 소재 불명으로 사실상 수사가 중지된 사람을 말한다. 큰 범죄가 아닌 이상 이들을 계속 추적하진 않지만 경찰은 “해외로 나가지 않은 이상 전담팀을 꾸려 추적하면 대부분 잡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먹고 자려면 돈이 필요하다. 본인 명의의 전화나 카드를 쓰면 즉각 위치가 들통나기 때문이다.
▷최 전 교육감은 인천 연수구에 있는 24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제3자 명의로 된 휴대전화와 체크카드를 사용했다. 조력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친인척과 교육계 인사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주지 근처 식당에서 붙잡힌 최 전 교육감은 수사관들이 “최규호 씨 맞느냐”고 묻자 순순히 “네”라고 시인하고 체포에 응했다. 오래 도망 다닌 수배자들은 검거 후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며 죄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최 전 교육감도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다고 한다. 죄 짓고 살기는 힘들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