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먹이를 주우러 물에 들어간 원숭이. 동아일보DB
김재명 기자
외국 신문은 우리처럼 해가 바뀐다고 특별한 사진을 쓰지 않는다. 그날 주요 뉴스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새해 첫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해 수백만 명이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전국 바다와 산을 찾는 우리나라. 우리는 “신년호에 뭔가 특별한 걸 내놔라”라고 요구한다.
새해 1면 사진 단골 메뉴 중 하나는 12간지 동물 사진이다. 2019년 돼지해를 맞아 “복스럽고 새끼를 많이 낳은 엄마 돼지를 찾아라”라는 미션이 내게 떨어질지 모른다. ‘아, 전국 양돈장을 누비며 훌륭한 모델을 찾아야 하나.’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실 동물 사진은 아기 돌 사진만큼이나 어렵다. 찍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그래서 사진기자 선배들은 참 많이들 동물에게 무례를 저질렀다. 몇 년 전 한 기자는 호랑이해를 앞두고 포효하는 호랑이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호랑이는 멋스러운 포효를 주지 않았다. 화가 나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포효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즉, 호랑이를 신경질 나게 한 것이다. 느릿느릿한 호랑이를 차로 몰아 바위 위로 올라가게도 하고 심지어 예비군 훈련장에서나 쓸 법한 고무총 비슷한 걸 쏘기도 했다.
수년 전 취재차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공원 내 사파리에 갔다. 그곳에서는 동물 보기가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간(일출 시간 전후, 일몰 시간 전후)에만 가능했다. 동물 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정해 놓은 규칙이다. 투어 도중 기린과 코끼리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가까이는 가지 않았다. 당시 가이드는 야생 코끼리와 기린은 성격이 거칠어 언제 달려들지 모른다고 했다. ‘과자를 주면 코로 받는다’는 코끼리 아저씨는 맘 좋은 아저씨가 아니다. 더구나 인간의 과도한 손길이 닿으면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한 야생 코알라 보호공원에서는 높은 유칼립투스 나무 위에서 자는 코알라를 누구도 깨우지 않는다. 코알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가이드에게 부탁해 코알라 우는 소리를 배워 관심을 유도한 뒤 촬영을 해야 한다.
수십 m 나무 위의 새 둥지 사진을 찍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을 전문가에게 배운 적이 있다. 400mm 이상의 망원렌즈와 트라이포드(삼각대)가 필수 장비다. 새는 먼 거리에서도 소리와 냄새에 민감하다. 숲과 비슷한 색의 위장막에 들어가야 하고 냄새가 많이 나는 향수, 화장품은 바르면 안 된다. 어미 새의 신경을 건드리면 사진은 그걸로 끝이다.
과거에는 우리도 동물에 대해 참 무심했다. 하지만 이제 동물과 공존하려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대전의 한 동물원을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를 많은 사람이 애도했다. 몇 달 전 한 동물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20여 년간 생활한 국내 유일의 북극곰을 영국 야생공원으로 보낼 계획도 세웠다.
나도 ‘동물 친화적’ 사진 찍기에 힘쓰기로 마음먹었다. 동물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새해 돼지 사진이 나를 부르고 있다. 렌즈를 갈고 닦으며 멋진 사진을 찍는 걸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동물보감의 돼지 페이지를 찾아 그들을 공부할 것이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미리 챙길 예정이다. “돼지야, 돼지야. 가족처럼 대할 테니 멋진 사진 다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