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앤디 김, 한인 첫 민주당 하원의원에
지지자들과 함께 6일(현지 시간)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뉴저지주 제3선거구의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한인 2세 앤디 김 후보가 뉴저지 마운트로럴 호텔에서 개표 방송을 보며 지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많은 지지자가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남아서 김 후보를 응원했다. 뉴저지=박용 기자 parky@donga.com
한인 2세인 앤디 김은 극적인 선거 드라마를 연출했다. 65만 명의 유권자 중 백인이 85%, 한국인은 300여 명에 불과한 지역구에서 그는 ‘트럼프 측근’인 2선의 공화당 현역 의원 톰 맥아더(58)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다 승기를 잡았다.
선거 당일 밤 뉴저지주 마운트로럴의 한 호텔에 모여 당선 파티를 준비하던 앤디 김 후보 지지자 200여 명은 오후 11시경 환호했다. 개표 초반 오션카운티에서 25%포인트 차로 뒤지던 앤디 김이 민주당 텃밭인 벌링턴카운티 개표가 시작되면서 단숨에 격차를 줄이며 치고 올라왔다. 초박빙 승부는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영 김
“우리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하게 돼 자랑스럽다.”
약속대로 앤디 김은 이날 밤 선거사무소 연단에 다시 올라 지지자들 앞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8일 오전 2시 현재 앤디 김은 49.8%를 득표해 맥아더 후보(48.9%)에게 2612표(0.9%포인트) 차로 앞섰다. 상대 맥아더 후보는 “힘든 싸움이었다. 끝까지 결과를 볼 준비가 돼 있다”며 패배를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재자와 임시 투표 7000여 표가 아직 남았다는 것.
선거 초반 열세였던 앤디 김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 의료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약값 인하, 사회보장 확대 등의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를 공략해 나갔다. 뉴저지 주민인 마티 화이트먼 씨(내과의사)는 “헬스케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앤디 김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정착한 부친 김정한 씨(71)는 “앤디가 의사가 되길 원했지만 ‘약한 사람, 약한 국가를 돕기 위해 정치를 하고 싶다’는 꿈을 꺾지 못했다”며 “주민에게 약속한 대로 기업 후원금은 받지 않고 개인 후원금만 받아 선거를 치르며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이라크 및 이슬람국가(IS) 담당 보좌관으로 일한 외교안보 전문가인 앤디 김은 선거 내내 ‘워싱턴 엘리트’ ‘아시아계 이방인(outsider)’이라는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렸다. 앤디 김은 이날 승리를 선언하며 “극단적인 파벌주의를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겠다”고 약속했다.
영 김 후보 역시 상대 후보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영 김 후보는 51.3%를 득표해 민주당의 길 시스네로스 후보(48.7%)를 3879표 차로 눌렀다. 영 김 캠프 측 관계자는 “부재자 투표 개표 결과가 모두 확인돼 ‘당선 확정’이라고 발표되기 전까지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영 김은 당 지도부와 접촉하며 하원에서 함께 일할 자신의 팀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7일 오후 영 김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롤런드하이츠의 한 연회장 단상에 올라 “‘아메리칸 드림’의 특별한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 꿈을 실제로 이뤄낼 능력을 갖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자 그를 보기 위해 모인 지지자 300여 명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영 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북한 인권 문제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온 영 김은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의류 사업을 하다 정치에 입문했다.
영 김 후보의 승리 소식을 들은 한인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60대 여성 김화영 씨는 “영 김은 한인뿐 아니라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미국인을 위해 일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이제 한인 청년들은 새로운 ‘롤 모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뉴욕=박용 parky@donga.com / 로스앤젤레스=황규락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