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난민행렬’ 멕시코-코스타리카 2주 동행기 경제 붕괴, 정치혼란에 조국 등져… 범죄 표적 피하기 위해 모여서 이동 이동 통로인 멕시코 남부 주민들, 가난한 형편에도 닭 잡고 쉼터 제공 “인심좋은 멕시코서 정착” 주민 늘어… 멕시코시티 도착전 2000명 난민 신청
미국으로 가기 위해 캐러밴을 이뤄 이동하는 온두라스인들이 멕시코 남부 후치탄시에서 차에 한가득 올라탄 채 멕시코 국기와 온두라스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들은 질서 정연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자연이 아름답고 인심 좋은 후치탄에 정착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이재 교수 제공
김이재 경인교대 교수(지리학자)
하지만 이 주장은 근거가 없어 보였다.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주 후치탄시에서 목격한 이주민들은 항상 질서를 지키려 애쓰는 온순한 시민들이었다. 자녀에게 절망을 대물림하기 싫어 탈출을 감행한 부모가 많아 유모차를 탄 아기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들이 캐러밴을 형성한 이유는 간단했다. ‘야수’로 불리는 멕시코 횡단 화물열차에 몰래 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수천 달러를 요구하는 브로커를 통하면 마피아와 연계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동하면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지만 함께 움직이면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이들의 통로가 된 치아파스, 오악사카 등 멕시코 남부 지역은 원주민 문화와 모계사회 전통이 깊고 음식과 축제가 화려한 곳이다. 개발이 지체돼 멕시코에서도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100년 만의 강진이 발생한 후치탄 일대는 붕괴된 건물이 방치돼 있을 정도로 복구가 더뎠다. 하지만 원주민 출신 여성 정치인 글로리아를 비롯해 테우안테펙 여성들은 이주민들을 위해 닭을 잡고 옷과 쉼터를 제공하며 말했다.
멕시코 남부 후치탄시를 차량으로 줄지어 통과하는 온두라스인들과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후치탄 현지 수녀들.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에 자리한 니카라과 이주민 밀집 지역의 미용실(왼쪽부터). 김이재 교수 제공
최근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까지 경제가 무너지고 정치 혼란이 반복되자 중미의 평범한 국민들의 엑소더스가 본격화됐다. 온두라스는 살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무법천지로 변해 일자리가 없고, 적은 임금도 갱단이 뺏어 간다. 기후 변화로 커피 작황도 최악이다. 죽음의 공포가 일상화되다 보니 어떻게든 떠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그늘도 있었다. ‘순수한 삶’(푸라 비다)을 지향하는 평화롭고 자연친화적인 코스타리카는 난민들이 몰리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치안 불안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공항에는 코스타리카 방문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리는 ‘경고 표지판’을 세울 정도로 살벌해졌고, 수도 산호세 도심은 오후 6시 이후에는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인구 500만여 명 가운데 니카라과 출신이 100만 명에 육박하자 올해 여름 ‘리틀 니카라과’로 불리는 메르세드 공원에서 반난민 시위가 이어졌다. 하지만 평범한 코스타리카인들은 “이주민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힘든 노동을 담당하는데 약자를 혐오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코스타리카도 빈부격차가 크고 여러 문제가 있지만 난민들과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김이재 경인교대 교수(지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