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취임 1년 반, 새 경제팀 출범… 李 책임총리도 ‘정상외교 한 축’ 대통령 성패 가를 향후 1년 반… 외교안보에서 善意 믿으면 실패 ‘내 편’ 믿는 인사도 결국엔 毒
박제균 논설실장
1년 반 뒤인 9일 대통령은 2기 경제팀을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같은 날 열린 공정경제 전략회의에서 “경제성장 과정에서 공정을 잃었고, 함께 이룬 결과물이 대기업집단에 집중됐다”며 반칙과 특권으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역설했다. 새 경제팀에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다. 일관성이야말로 인간 문재인의 장점이지만, 1년 반 전이나 지금이나 참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금요일, 국정의 전면에 큰 걸음을 내디딘 또 한 사람은 이낙연이다. 함께 일했던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로 가면서 경제 분야도 이 총리의 통할(統轄) 아래 들어왔다는 건 익히 아는 분석이다. 그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같은 날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다. 2, 3명의 정상이 정상외교에 나서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면서 ‘이 총리도 정상외교의 한 축’임을 분명히 했다.
1년 반을 기점으로 총리에게 경제는 물론 외교 권한 일부까지 넘겨주려는 대통령의 의도는 자명하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지상명제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은 대통령을 하는 목적인 ‘세상 바꾸기’와 직결돼 있다. 평화가 정착되면 ‘분단 구도와 전쟁 위협을 빌미로 세상을 지배해온 사이비 보수세력’의 설 땅이 사라질 것이란 시각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이런 시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남의 말을 경청은 하되, 웬만해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게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건 지난 1년 반이 입증한다. 다만 문 대통령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점점 당겨지는 추세로 볼 때 ‘대통령의 시간’은 1년 반 정도라고 본다. 더구나 1년 5개월 뒤인 2020년 4월엔 총선이 있다. 임기 후반 총선 뒤엔 급격히 미래권력으로 파워가 쏠리는 것이 우리 대통령제의 한계다.
앞으로 1년 반을 어떻게 치러내느냐가 문 대통령 시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것이다. 길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의 명운(命運), 어쩌면 국운을 좌우할 이 중차대한 시간에 대통령이 반드시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나라의 지도자는 선의(善意)를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에서 상대의 선의를 믿었던 수많은 지도자들이 무능한 리더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정, 믿고 싶으면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Trust, but verify).
이는 비단 남북관계나 외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통치의 만사(萬事)라고 할 수 있는 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능력은 모자라지만 통치철학에 맞는 사람을 중용하면 잘해 주겠지, 하는 선의의 기대는 대통령에게 독(毒)이다. 일반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는 한국 사회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그런 인사를 하면 줄줄이 탈이 나기 십상이고, 그 실패는 결국은 본인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른바 ‘내 편’이라는 사람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향후 1년 반, 다시 말해 정권의 성패가 걸려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