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랫동안 지적능력 측정 도구인 IQ(Intelligence Quotient)에 의지해왔습니다. 1905년 알프레드 비네 등 프랑스 심리학자들이 지적장애아를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IQ는 1912년 독일 심리학자 빌리암 슈테른이 일반 아이들의 지능을 측정하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수리, 언어, 도형 문제로 구성된 IQ 테스트는 오늘날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측정하는 데 그다지 유용한 지표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하버드대의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1943∼)의 다중지능이론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자 교육계는 술렁였습니다. 그동안 언어와 수리 능력 위주로 한 줄 세우기에 급급했던 학교 교육에서 대인관계, 자연 친화, 신체운동, 음악, 시각 지능 등 다양한 역량에 주목하게 됩니다. 1994년을 기점으로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바뀝니다. 그 밖에 논술, 심층면접, 적성검사 등 다양한 평가 방식이 등장합니다. 최근에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대학 입시의 주류로 떠올랐습니다. 학종은 학업 역량, 학업 외 역량은 물론 인성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입니다. 내신 성적의 비중은 점점 커졌고 학생들은 내신의 중압감에 짓눌리게 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학교의 내신 성적과 학종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당초 학종의 도입 취지는 그럴듯했습니다. 수능으로 한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장기간 쌓아올린 학업의 성과를 종합하여 학업 역량과 잠재력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었지요. 5지 선다형으로는 창의성을 신장할 수 없고 미래 인재를 기를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었습니다. 더불어 학교 교육을 내실 있게 하고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하는 취지도 반영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종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입 취지와 달리 표류하고 있습니다. 평가의 기본은 공정성입니다. 평가받는 당사자들이 공정성에 의문을 품고 결과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면 그 평가 시스템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좋은 의도가 과정과 결과의 정의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학종이 공정성과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겠지요.
내일 수많은 수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앞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칩니다. 수능이 최선의 평가도구는 아니지만 수험생들이 자신이 가진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바라며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